청주TP 새 밑그림 필요하다
청주TP 새 밑그림 필요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01.21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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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과거를 파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가 그렇고, 영국이 그렇고, 로마가 그렇다. 많은 이들이 유럽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유수의 세계 문화재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고 미술관인 유럽의 유명도시들은 굴뚝 없는 산업인 관광으로 먹고산다. 그것도 아이러니하게 약탈한 남의 나라의 문화재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

이러한 문화재를 둘러싸고 논란은 치열해지고 있다. 강대국에 유물을 빼앗긴 나라에선 반환운동도 벌이고 있고, 보유국에선 권리를 주장하며 전쟁아닌 전쟁 중이다. 그나마 문화재가 있던 원자리로 돌려줘야 한다는 명분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받으면서 약탈 문화재의 거취가 주목받기도 했다. 문화재로의 가치 여부를 떠나, 크고 작은 것을 떠나,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명을 증명하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정신이기 때문이다.

세계 문명에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칭송받는 금속활자의 대부격인 `직지'가 아직도 파리의 도서관 수장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보유국의 태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의 가치나 영향을 조명하는 것은 뒷전이고 우수한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문화재 반환의 촉발 소지를 없애려고 공개조차 꺼리는 것을 보면 청주사람들의 직지사랑은 영원한 짝사랑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정도다.

최근 청주에서는 `직지'와 견줘도 손색없는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청주 오송 개발지역과 청주 테크노폴리스 개발부지에서는 기원후 3~4세기 때의 대규모 무덤과 집터가 발굴되면서 우리나라 삼국 초기의 문화와 청주 역사의 시작점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유적과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두 유적은 청주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사의 단초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두 유적에서 확인된 유물은 그 수량이나 뛰어난 문화적 속성은 독립된 문화권으로 설정할 정도로 가치가 높다.

이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면 국립청주박물관의 수장고가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문화재보호법상 출토된 매장문화재는 해당 지역의 국립박물관에서 수장하는 것이 원칙이나 국립청주박물관의 수장고가 이들 유물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자 220여km나 떨어진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로 임시 보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백제시대의 유물이 보관할 장소가 없어 신라를 대표하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맡기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오송과 테크노폴리스 모두 발굴 당시 현장은 거대한 권역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1~2년이 지난 지금, 고층 아파트단지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나마 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가 개발을 앞두고 보존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개발되기 전,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청주 테크노폴리스는 산업과 상업, 주거공간이 복합된 도시계획이다. 그런 만큼 1800년 전 이곳에 대규모 백제 마을(집터+공방)이 들어섰고, 죽음의 공간이 함께 했으니 `폴리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편의와 첨단으로 재탄생한 아파트 단지는 1800년 역사를 딛고 만든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에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의무다.

21세기 움집과 대장간, 공방은 테크노폴리스의 개발 방향과도 일치한다. 옛 모습을 최대한 기억할 수 있는 공간과 삶과 생산을 같이했던 사람들의 자취를 복원해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면 명품 아파트의 탄생도 가능하다. 수명이 50년에 불과한 아파트를 짓기 위해 1800년 전 역사와 2300년 축적된 역사를 파괴하는 것은 분명 후손의 잘못이다. 정확한 기록과 기억의 장소를 통해 훼손과 파괴로 기록될 역사의 현장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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