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 홀로 앉아
눈 오는 밤 홀로 앉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1.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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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일 년 사 계절 중 사람들이 고독감을 가장 느낄 때는 어느 철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겨울을 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겨울 중에도 눈이 많이 내린 날, 그것도 홀로 있는 밤이라면, 고독감이 엄습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수항(金壽恒)은 무슨 일로 눈 내린 겨울 밤에 홀로 지내는 신세가 되었을까?

눈 오는 밤 홀로 앉아(雪夜獨坐)

破屋凄風入(파옥처풍입) 무너진 집에 찬바람 파고들고
空庭白雪堆(공정백설퇴) 빈 뜰엔 흰 눈이 쌓였네
愁心與燈火(수심여등화) 시름은 등불과 더불어
此夜共成灰(차야공성회) 이 밤에 모두 재가 되는구나


문면만으로는 시인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무너진 집(破屋)에서 한겨울을 지내는 것으로 보아 아주 곤궁한 형편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너진 집인지라, 찬바람을 막아 줄 벽이며 문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다. 작은 문틈으로도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한겨울에 이렇게 허술한 집에 묵고 있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잠 못 이룬 채 홀로 앉아 지새는 겨울밤에 찬바람까지 숭숭 방 안으로 들어온다면, 고독감이 절실하게 밀려들게 마련이다. 더구나 마당도 텅 비어, 시인의 고독을 달래 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마당에 유일하게 있는 것은 쌓인 눈인데 이는 그나마 있을 수 있는 외부 사람의 왕래 가능성마저 차단시키고 마는 역할을 한다. 그야말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서 추위와 고독에 시달리는 겨울밤인 것이다.

시인은 마음속에 쌓인 시름마저 적지 않으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텐데, 이때 위안으로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방 안을 밝히고 있던 등불이다. 등불의 속성은 탄다는 것이고, 결국 재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인은 타들어가는 등불을 보고, 자신의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름도 등불과 함께 이 밤에 다 타서 재가 될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뚝뚝 떨어지는 고독감은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누군가 옆에서 위로를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울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채,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있고, 있는 곳조차 생활하기도 변변치 못한 곳이라면, 그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독감과 절망감이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주변을 돌아다보면 위안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잠 못 이룬 겨울밤, 등불이 밝히는 것은 결코 깜깜한 방만이 아닌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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