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 승인 2019.01.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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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작년 마지막 날에 아이들과 함께 새해 결심과 지난해의 반성을 적는 독서교실 행사를 했다. 종이에 한 해를 보내며 느낀 생각과 소원, 바람을 적고, 복주머니에 넣었다. 내년 마지막 날에 풀어보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이 한 해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했다. 그처럼 `무언가를 적는다.'라는 것이 마음을 다듬고,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말과는 달리 펜이 무서운 것도 그 때문이리라.

오늘 소개할 책은 그런 작은 행동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책,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다니카와 šœ타로, 국제엠네스티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천개의바람)이다.

책 표지에는 한 사람의 맨발과 긴 장우산이 놓여 있다. 초록과 검정 단색으로 되어 있는 다소 딱딱한 그림이다. 그린이인 이세 히데코의 다른 책인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는 수채화로 따스하고 아름다운 화풍을 자랑한다. 근데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책과는 달리 녹색과 검정 정도의 색만 사용하고 있다. 선도 펜만으로 죽 그은 것이 다른 사람이 한 거 아닌가 싶었다.

책 주인공인 시란 씨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큰 도시로 나와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일을 잘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퇴근 후 텔레비전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먼 나라의 불쌍한 아이를 보면서 `어쩔 수 없지. 세상에 저런 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다.

어느 날 시란 씨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풀려나도록 편지 쓰는 일을 함께해 주시겠습니까?'라는 편지였다. 시란 씨는 `만나 본 적도 없는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야. 나랑은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런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집에 군인들이 시란 씨를 잡아간다. 죄의 이유는 `집에 우산이 하나도 없고, 우산을 쓰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시란 씨는 `비를 맞으면서 걸으면 기분이 좋으니까요'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지휘관은 `비가 오면 누구나 우산을 쓴다. 모두와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은 적이다'라는 이유로 시란 씨를 마구 때리고 감옥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2년 동안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게 되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봐도 `왜 이래요?'할 상황이다. 이야기를 조금 더 있을 법한 상황으로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만든 것도 어쩌면 작가의 의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혀 있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런 어이없는 상황을 한 통의 편지로 위로하고, 고발한다. 한 통의 편지가 가진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심이 세상을 바꾸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이름에 그러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을 너무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설정한 것도 이해가 된다.

이 책을 함께 한 국제엠네스티는 세계적인 인권 단체다. 이 책의 시란 씨처럼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쓰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우리나라가 왜 법으로 사람을 재판하고 있는지, 법으로 재판받기 전에는 왜 죄가 없다고 인정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좋은 책이다.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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