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한체육회
위기의 대한체육회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1.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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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1970년대 중학시절, 하키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 다녔는데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바로 하키부 코치였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하키 스틱으로 엉덩이를 맞아 봤다. 60여명 이던 한 반 아이들을 운동장에 모두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한 명당 세 차례씩 엉덩이를 맞았는데 대부분이 쓰러졌다.

이후 학교에 다니면서 자주 본 장면이 있다. 하키부 소속인 학생들이 맞거나 얼차려를 받는 모습이었다. 운동부원이 아닌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또는 체육관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폭력을 그냥 `일상적'인 일로 지켜보며 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운동부 소속 학생들이 맞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운동부원들은 `코치 선생님' 에게는 물론 함께 운동하는 선배들에게도 맞았다. 출전한 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는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기강이 빠졌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벌을 주거나 구타하는 것을 코치 선생님들이 묵인하는 황당한 때도 있었다.

강산이 서너 번이나 바뀐 지금에 와서도 체육계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 체육은 고사하고 심지어 최고 엘리트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대표 체육선수들마저 여전히 끔찍한 고통을 받는 사실이 또다시 확인됐다.

이번엔 쇼트트랙의 심석희 선수가 도화선을 당겼다.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당한 폭력에 이어 심지어 17세이던 고교생 시절 코치에게 강제 성추행까지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법정에서는 초등학교 때 당한 폭행 사실까지 증언해 충격을 줬다. 심석희는 지난달 항소심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선수 생활 초기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아이스하키 채로 맞아 손가락이 부러진 사실도 증언했다. “긴 기간 일상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덧붙여 재판부를 놀라게 했다.

외신도 이번 심석희 선수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한국 스포츠계의 민 낯을 꼬집었다. AFP통신은 긴급 타전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며 “한국 스포츠 지도자들의 선수들에 대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계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폭력 피해 사실도 보도하며 “한국 사회는 여전히 보수적이며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은 공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빙상계를 바로 세우고자 출범한 `젊은빙상인연대'가 대한체육회 수뇌부의 총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같은 날 `대한체육회가 빙상연맹의 해체를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나오자 이를 `꼬리 자르기'로 규정하고 이기흥 회장 등 수뇌부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젊은빙상인연대는 정부의 즉각적이고 과감한 대응도 주문했다. 빙상계뿐만이 아닌 체육계 전반에 대해 전수 조사에 나설 것과 성폭력의 항구적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촉구했다. 수십 년째 성적 지상주의의 엘리트 체육에 매몰돼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부. 이젠 대한체육회를 해체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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