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소금커피가 녹아들다
버킷리스트, 소금커피가 녹아들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1.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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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일이 있다.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버킷리스트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으로 중세 유럽에서 자살이나 교수형을 할 경우 목에 줄을 건 다음 딛고 서 있던 양동이를 발로 찼던 관행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나의 커다란 버킷리스트는 먼 꿈을 꾸듯 간직되어 있다. 아니 영영 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겁쟁이인 나로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비밀수첩에 적힌 목록에는 혼자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다. 홀로 족이 부러운 건 아닌데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가 보다. 혼밥과 혼술은 해 볼 엄두도 못 내고 혼자 영화보기인 혼영과 혼자 쇼핑하는 혼쇼는 해볼 만하다. 그중에 제일 간절한 일은 외국에서 몇 달간 살아보기다. 낯선 곳에 가서 그들과 어울리며 물들어보고 싶다. 거기의 생활에 젖어 함께 이국적인 문화에 빠져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그이는 까맣게 모르고 있을 터이다. 소심한 성격으로 앞산도 못 가는 나를 잘 알고 있기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여긴다. 하물며 외국이랴. 나 자신도 아득한 생각으로만 하고 있다.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중의 마지막 번째에 올라가 있는 리스트다.

그래도 나는 시시로 상상을 펼친다. 어릴 적 알사탕을 빨다가 다 먹기에는 아까워 남겨놓은 사탕을 꺼내 먹듯이 달콤함이 필요할 때면 끄집어낸다. 낯선 이들과 어울리며 시간의 물살을 흘려보낸다. 좋은 이웃이 생기고 멋진 친구도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하는 소통이 오가고 서로 간에 정도 싹튼다. 이렇게 그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혹시나 아는가. 우연히 기회가 올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의 숲이지 않은가. 무수히 일어나는 그 숲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하물며 커피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누가 커피에 소금을 넣으리라고 생각한 이가 있을까. 설탕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대만의 커피가 사람들에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 “빠스우뚜C”라는 85℃의 소금커피다. 여기엔 솔드폼이라는 우유크림을 올려 부드러움을 완성해준다. 커피의 쓴맛을 잡아주어 향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소금은 짠맛만 내는 게 아니라 원래 음식의 단맛을 살려주는 성질이 있다. 한번 마셔본 사람은 자꾸만 찾는 중독성이 있을 만큼 반한다고 한다. 대만에 가서 이 커피를 마셔보는 게 목록에 한 개가 더 늘었다.

15세기 무렵 터키에서는 결혼 전 신랑 후보와 그 가족이 처가를 방문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신부가 타온 커피로 음식 솜씨를 가늠하고 커피 잔으로 재력을 평가했다고 한다. 만약 신부가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서 혼인에 대해 거절표시를 했다.

이런 소금커피가 어느 날부턴가 주목을 받는다. 이처럼 세월은 예견된 대로 지나가지 않는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도 기적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까무러치게 놀랍게도 나에게 찾아온다면 아무것도 재지 않고 짐을 싸리라. 내 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일 테니까.

생소하여 진가를 전혀 모르던, 맛을 더 부드럽게 해주고 향을 좋게 해주는 커피 속의 소금이 던져준 신선함. 나는 버킷리스트의 여정에서 뜻밖의 소금 같은 우연을 지금도 여전히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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