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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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수필가
  • 승인 2019.01.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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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수필가
전영순 수필가

 

빈 공간이었던 `?'는 세상과 관계 맺기 하면서 불리는 이름씨들이다. “나”라는 주체에 붙여진 무수한 이름들, 우리는 오늘도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어쩌면 끝없는 욕망과 투쟁하고 있는지 모른다. 술어적 주체인 `?'안에 나는 00이다 에서부터 시작하여 무엇인가 드러내기 위해 꾹꾹 채워보려고 하는 습성이 인간에게는 잠재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불리는 이름만으로도 수도 없이 많다. 본인의 욕망에 의해 채워진 이름과 타인의 의해 붙어진 명칭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욕망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을 맞이하면서 `?'안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기해년 새 출발을 한다는 명목하에 여행길에 올랐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새로운 다짐을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며 희망찬 내일을 설계한다. 오늘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기운은 모두 떨쳐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하였다. 소속된 단체에서 작년 한 해의 노고와 회원 간의 단합대회를 위해 떠난다고 해서 필히 따라나섰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아침 비행기 시간이면 청주에서는 새벽에 떠나야 한다. 2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니 그나마 다행이다. 중국 여러 곳을 다녀왔지만, 칭다오는 처음이다. 한해를 새롭게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떠나는 여행이라 마음이 가벼워서 좋다. 비행기 안에서 주는 빵 하나가 전부다 보니 공항에 도착하니 배가 많이 고프다. 칭다오 공항에 도착해 회장이 마이크로 계획했던 코스는 다 생략하고 짝퉁시장에 들렀다가 배가 고프니 바로 저녁식사를 한단다. 다들 이유 없지유? 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얘기하니 일구동성으로 아멘 한다.

찌모루 짝퉁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날씨는 춥고 진한 담배냄새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처음”이란 호기심에 시장을 둘러봤으나 “역시나” 하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리어카에서 팔고 있다. 예전에 시골 5일 장날 고추 장사들이 들고 다니던 눈금 저울로 1㎏에 30위안이라고 한다. 달아보니 네 개가 올라간다. 작은 것 하나 덤으로 올려 준다. 먹으려고 쪼개어보니 모두 상했다. 안 산다고 했더니 두 개 더 준다. 상한 것 열 개 받아들면 뭐하랴? 산 망고스틴을 리어카 위에 올려놓고 웃으면서 돌아섰다.

지네, 바퀴벌레 등 벌레와 꼬치를 파는 전통시장, 피차이위엔에서 꼬치 맛보기와 샤브샤브로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로 들어와 짝꿍이랑 바로 떨어졌다.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아침이다. 아침 열 시, 여유 있게 버스에 오르니 회원들은 걸쭉한 회장의 입담에 이단 교주에 홀린 듯 박장대소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 헌금하라고 호명하면 다들 지갑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런 불만 없이 따박따박 현찰을 내놓는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은 풍경이다. 오전에 진주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오후에는 칭다오 맥주 공장을 방문해 시음하고 바로 마사지 받으러 가는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없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 뭐 하니 잔교라도 한 번 가 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영종교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묵살시켜버린다. 하는 수없이 일행에 맞춰 저녁식사 전 마사지를 받고 한국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식당과 연결된 1층에서 참깨 쇼핑을 하고 호텔로 들어왔다.

이들과 처음 동행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은 여행 코스이다. 호텔에 들어오니 보이지 않은 스트레스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2박 3일, 한 일이라곤 맥주공장 들러 시음한 일과 시장 따라다닌 기억밖에 없다. 여행도 선택이지만 소속된 단체에서 신년맞이치고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셈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시작하려고 따라나선 나로서는 ~~되기는 고사하고 여행에서 얻은 선물, A형 독감으로 기해년(己亥年) 초입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다행히도 나의 1년 액운을 독감으로 때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마저 감사해야겠다. 그래 이제부터 일일신우일일신(日日新又日日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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