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차가 놓인 걸 보니 이사를 하는 집이 있나 보다. K 아파트에 입주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아파트 현관문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이웃들이 한 집, 두 집 이삿짐을 꾸려 떠나고 있다. 이사를 간다는 연락도, 새로 이사를 온다는 소문도 없어 그저 이삿짐을 나르는 차가 눈에 띄면 가는 가 보다, 오는 가 보다 무심히 지나친다. 10년을 한 건물 안에 살면서도 승강기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주고받는 이웃도 있지만,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내다 보니 떠남에도 무덤덤하다.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의 모습이 대부분 이러하리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떠올리면서 향수에 젖는다. 같은 골목에 살며 이웃끼리 친형제자매 못지않게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을 보았다. 변변치 않은 음식도 함께 모여 나누어 먹고, 슬픈 일이 생길 땐 함께 위로해주는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였다. 옛날 어머니들이 추운 겨울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빨래와 김장을 하고, 아버지들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농사일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정다운 이웃사촌들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습의 이웃사촌이란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문을 굳게 잠그고 오직 내 가족끼리만 모여서 즐거움을 찾고 슬픔을 나누려 하니 가끔은 문제 해결의 통로가 막히고 단절되어 불행을 낳는 일도 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사라지는 것은 불신과 불안의 시대 현상이며, 이기심의 극대화로 양보와 배려가 고갈되고 벽과 다름없는 시멘트의 주거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옛날엔 부모·형제는 물론 사촌까지도 한집에서 살았다. 많은 가정이 5대까지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한솥밥을 먹으며 살면서도 정이 넘치고 우애가 돈독했다. 부모님의 피를 나눈 형제들도 바쁜 생활 패턴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에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니 만나면 손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형제조차도 이렇다 보니 이웃과 잘 지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는 5남매의 맏며느리이다. 5남매 모두 멀리 살아 가끔 소식을 주고받을 뿐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사촌 형제들이 가까이 살고 있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넷 집이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가끔 국내를 비롯한 해외여행도 함께하며 사촌끼리의 우애를 다진다.
사촌 형제 중 맏형인 남편 덕분에 나는 시동생들과 동서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그들은 가장 편한 자리, 가장 좋은 것들을 우리 부부에게 우선으로 양보하고 부모처럼 위해준다. 나이 차이가 조금은 나지만 그들의 대화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항상 우리 부부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최선을 다한다. 좋은 일도, 언짢은 일도 함께하고 주말농장에 기른 유기농 농산물도 나누어 먹는다.
며칠 전에도 사촌 부부 8명이 1박 2일 부산여행을 다녀왔다.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나눈 정담情談들은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채워준다.
사촌들끼리의 모임은 20년이 넘었다. 혼자는 너무 외로운 힘든 세상, 가끔 함께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삶에 희망을 주는 사촌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동안 친절하게 다가서지 못한 채 이사를 하는 떠나는 이웃이 어디에선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오늘은 가끔 푸성귀를 나누어 먹는 옆집의 벨을 누르고 안부 인사라도 나누어야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