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탁(三澣四濁),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삼한사탁(三澣四濁),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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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손톱으로 톡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시조시인 이희승의 <벽공(碧空)>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내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풋풋한 시절이었는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감동은 그러나 그 후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시인을 꿈꾸던 그 시절 나는 티끌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을 올려보면서 `비행기가 날았음 좋겠다/ 종이 비행기라도'라고 단 두 줄을 써놓고 망연자실, 막혀버린 언어에 한탄하며 두려운 시심(詩心)으로 지금껏 연명하고 있다.

온전한 내 호흡기를 갖고도 들숨 날숨을 편하게 이어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이미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서너 겹 문풍지로 삭풍을 막아 내고 뜨끈하게 군불을 지펴 아랫목을 덥혀도, 세수를 마친 이른 아침 둥근 쇠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쩍-하고 손가락이 달라붙던 시절의 한파는 사흘 정도 견디면 다시 나흘간은 그럭저럭 살 만했던 겨울.

지금은 가장 쉬운 숨쉬기조차 고통으로 고스란히 남는 불투명의 세상, 동토의 나라가 되어 온 백성이 힘겹다. 편하게, 그리고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호흡이 갈수록 조심스러워지는 극심한 미세먼지의 세상.

이렇게 지독한 불확실의 세상이 되어 버린 건 꼭 집어 누구의 탓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발뺌과 자기합리화를 위해 중국 대륙의 먼 서쪽 황폐한 사막의 모래바람이거나, 급하게 산업화가 진행된 대륙의 불안정한 공장의 불순한 배출을 비난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편서풍을 타고 속절없이, 그리고 경계의 구분 없이 넘어오는 미세먼지의 폭격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지정학적 한계만을 탄식할 수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색깔이라곤 전혀 없는, 흑과 백으로 양분된 흐릿한 도시에서 하얗거나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기를 쓰고 자동차 엔진을 작동시키며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다른 사피엔스들은 공연히 휘발유이거나, 디젤유, LPG 등 화석연료를 태우며 쓸데없이 헤매고 있다고 단정하는 비난을 퍼붓는다. 오로지 나만 절대적 사명을 지니고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쓴 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물론 중국발 미세먼지의 위협이 가장 크기는 해서 붉은 태양은 낮달처럼 보이고, 가까이 있는 우암산조차 희뿌옇게 만드는 악몽 같은 현상을 연일 만들어 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도 바람의 흐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수도권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도시의 서쪽에 공장을 집중시키는 무리수와 이를 바꾸고 싶지 않은 불통이 있다. 게다가 새의 깃털과 솜털을 잔뜩 충전한 자동차 바퀴 같은 옷을 입은 채 훨씬 더 빠르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며, 어제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본을 만들어야 하는 욕망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어리석음을 외면하고 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차갑거나 시원하거나 바람은 느끼는 것이고, 내 살갗에 와 닿기 전에는 흔들리는 나뭇잎이거나 깃발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는 상징일 뿐인데, 거기에 숨쉬기 어렵게 하는 미세먼지가 잔뜩 실려 있음은 재앙에 대한 경고이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경종이다.

그런데도 거친 호흡과 흐릿한 시야를,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키우고 있는 우리는 아직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 원인 진단과 이를 항구적으로 없앨 방도를 찾는데 주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함부로 푸른 나무를 베어내고 잿빛 포도(鋪道)로 뒤덮는 일에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신동엽 시인은 탄식한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중략) 아침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부분> 미세먼지에 하늘을 잃어버린 겨울, 세상은 쓸데없이 멀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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