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
슬픈 영화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1.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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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열한 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견뎌야 한다. 지루한 비행시간을 대비해 세 권의 책을 준비해 온 것은 참 다행이다. 하지만, 너무 얇은 책을 가져온 것이 착오였다. 8박 9일의 동유럽 여행을 가는 중이다.

해가 짧은 겨울의 유럽은 여행자들에게 비인기 지역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우리 일행으로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여러 국가를 다녀야 하는 일정이라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고 했다. 딴에 한 권은 가는 비행기에서, 한 권은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에, 나머지 한 권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 계획했다. 하지만, 유럽을 향해 가는 11시간의 긴 비행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 권만 읽고 잠을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유럽에 대한 환상에서 오는 설렘과 떨리는 마음이 정신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던 듯하다. 결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두 권의 책을 천천히 밑줄도 그어가며 읽어버리고 말았다.

집을 나가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물론 겨울의 동유럽은 아름다웠다. 더구나 새하얀 설경이 동화의 나라를 더욱더 환상적이게 했다. 하지만, 일곱 나라를 둘러보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에서인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책은 잘 읽혔다. 그런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졸리지도 않다.

비행기 안 대부분 승객들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무료한 마음에 영화를 보았다. `레슬러', 언젠가 인터넷에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라는 평을 받은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도 딱히 볼 것도 없어 보기로 했다. 많은 이야기가 섞여, 진지함도 몰입도도 떨어졌다. 전직 레슬러 아빠와 현재 레슬러인 아들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아들의 대사 중, 자신이 레슬러를 하는 이유는 아빠가 그것을 좋아했다는 것, 그리고 아빠에게 한 번도 자신은 레슬링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부분, 반면 아빠는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은 아내를 대신해 홀로 아들을 키웠고, 아들의 꿈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 결국, 두 부자의 행복의 관점 차이가 초점이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포기했음에도 그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는 아들은 경기장에서 레슬링을 하러 가고, 아버지는 아들의 경기장이 아닌 어느 호젓한 산속에서 행복한 얼굴로 자신의 늙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끝난다.

프랑수아 를로르는 《꾸뻬씨의 행복여행》에서 `행복은 뜻밖에 찾아오며,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행복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사물을 보는 방식에 있기도 하고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정작 행복하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여러 측면에서 선진국에 속해 있음에도 정신적으로는 빈곤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배려와 이해보다는 경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도 않으며, 멀리 있지도 않다. 지금, 이 자리, 이 순간, 이 사람이 옆에 있어 행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다. 부디, 슬픈 영화 속의 주인공의 모습이 내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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