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병실에서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9.01.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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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한파가 밀려오던 지난밤을 다리 통증과 싸우며 보냈다. 종아리가 뻐근하게 땅겨 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좌로, 우로 누워 봐도 고통은 더 심해진다. 수시로 뜨거운 찜질을 해 보지만 차도가 없다. 집안일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했다. 간간이 발등이 붓고 빠지기를 여러 날, 이번엔 종아리가 벌겋게 변하더니 허벅지부위까지 탱탱하게 부어올랐다.

급히 주치의를 찾았다. 의사는 진료 후 입원을 서두르란다. 그동안 참고 지나친 게 화근이었다. 이내 병동으로 옮겨지고 원인을 찾기 위해 바로 금식에 들어갔다. 초조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안은 가랑잎에 불을 댕기듯 바짝 타들어갔다. 붐비는 환자들 틈에서 겨우 자정이 넘어서야 하지 초음파검사로 들어갔다.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기계 속에 갇힌 어둠의 20분은 더딘 공포의 시간이었다. 연이어 심장초음파, 흉부 엑스레이가 진행됐다. 진이 빠져버린 나는 간신히 침상에 누워 주치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노인환자 병실은 소란스럽다. 실내는 병문안 온 이들의 슬픔과 위로의 말들로 가득하다. 첼로 소리처럼 애절하면서도 탁한 저음의 말 속엔 눈물이 스며 있다. 어둠이 덮치면 나약한 환자들의 고통 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칠순의 노인이 병실이 떠나가듯 울부짖는다. 당뇨병에 다리에 괴사가 온데다 쇼크로 혼수상태가 되었다. 코에 호스를 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링거로 연명하고 있지만, 그가 연신 내뱉는 흐릿하고도 어눌한 말,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댄다. 나는 안다. 그에게 지금 피붙이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늙고 병든 몸은 고요히 약해지는 게 아니라 통증과 함께 정신도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는 홀로 병마와 싸우다 생을 마감하였다. 허망한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는 어떤 연유로 천륜인 자식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것일까. 가족과 함께였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독거노인 125만 시대. 고령화가 되면서 주변에 고독사가 늘고 있다. 정들었던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 아무도 내 존재를 인식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들의 아픔은 경제적 빈곤과 육체적 고통보다는 마음에 병, 외로움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그때 알았다.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함께할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다음 날 검사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심장질환 합병증으로 이상 증세가 온 거라며 약물치료를 해야 한단다. 수술 부담감에 긴장했던 그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후 치료를 하면서 부었던 다리도,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한 걸음 뗄 수 있었다. 그동안 내 곁에서 묵묵히 나의 다리가 되어 준 남편의 수고로움을 생각한다. 간이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같이 아파해주던 남편이다. 큰딸은 퇴근길에 들러 나를 안심시키고, 서울에서 달려온 둘째딸이 병실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가족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통증이 가라앉자 나는 손꼽아 치료 끝나기를 고대했다. 아픈 시간은 더디 흐르나 보다. 병실에서의 일주일은 길고도 추웠다. 하지만, 기운 잃은 나에게 가족 모두가 힘이 되었다. 모두를 사랑한다.

어쩌면 인생은 행복하고 아파하다 결국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예외일 순 없다. 언젠가는 홀로 가야 할 그 길을 잠자듯이 고요히 떠날 수 있기를 빌어본다. 퇴원하는 길, 병원 문을 나서니 칼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남편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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