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
특이점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9.01.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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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필자는 언젠가 서정주의 시 `화사(花巳)'에서 동사를 모두 제거하고 명사만 남겨 본 일이 있었다. 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명사만으로도 시가 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시가 아니라 이 세상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이 질문은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에 대한 오랜 논쟁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명사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만물은 항상 변하고 있으니 동사일 것 같기도 하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모든 입자는 파동적인 특성이 있다고 한다. 아울러 모든 파동은 입자적인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세상은 명사이기도 하고 동사이기도 하다.

세상은 변한다. 그것도 끝도 없이 변한다. 하지만, 변화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질량이든 속도든 계속 증가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무한대가 되어야 하므로 변화가 무한히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세상은 변하고 있고 그 변화는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무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파동이라는 현상이 변화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아주 절묘한 장치라고 할 수도 있다. 파동현상은 올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다가 내려가고 내려가다가 올라간다. 그래서 무한이라는 불가능을 피하고 계속 변할 수 있다.

밤과 낮, 계절의 변화, 생로병사, 문명의 발생과 소멸 등 모든 변화에는 파동성이 존재한다. 변화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파동적일 수밖에 없다. 소리나 빛도 파동이다. 그래서 그런가? 소리는 언어가 아님에도 언어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혹시 소리가 파동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연은 변화에서 생기는 이 무한대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1을 어떤 숫자(x)로 나누어 보자. x가 0에 가까워지면 (1/x)은 점점 큰 값이 된다. 그런데 x가 0이 되면 어떻게 될까? 무한히 큰 수, 즉 무한대(∞)가 된다. 그런데 x가 양(+)수라면 양의 무한대가 되고 음수(-)라면 음의 무한대가 된다. 0은 양수도 아니고 음수도 아니다. 하지만 양수 쪽에서 접근한 +0과 음수 쪽에서 접근한 -0은 같은 영이라도 하늘과 땅 차이다. (1/x)의 값이 하나는 +∞가 되고 다른 하나는 -∞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수학에서는 특이점이라고 한다.

변화 중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점이 바로 특이점이다. 특이점 전과 후는 +∞가 -∞로 변화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다.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에 의하면 빅뱅에서부터 인간이 생겨나기까지 우주는 몇 번의 특이점을 지났다고 한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화합물을 만들게 된 사건, 화합물이 DNA라는 구조를 만든 사건, 뇌신경망이 만들어진 사건 등, 지나간 과거의 특이점이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의 출현과 인간과 인공지능의 융합 등,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특이점도 있다.

화합물이 점점 복잡해지다가 어느 순간 생명체가 되는 것이 바로 특이점을 통과하는 사건이었다. 생명체가 된다는 것이 화합물의 복잡한 정도가 증가하기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해지다가 그 복잡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약을 특이점 도약이라고 한다.

언제 다시 특이점 도약이 일어날까? 인간의 뇌가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종이 나타나는 일이 바로 다음의 특이점 도약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명의 진화과정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최소한 수백만 년이 걸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발전 속도를 보면, 기술이 그런 생물학적인 진화를 보고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다음의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획득하는 시점으로 본다. 무생물인 화합물이 생명이라는 특이점 도약을 했듯이, 인공지능이 감정 획득이라는 도약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날은 호모사피엔스에게 재앙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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