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01.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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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2019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새롭게 살아온 열흘! 그 열흘 동안 우리는 얼마나 새로워졌는가?

오나라 왕 손권은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부족한 부하 장수 여몽에게 “국가의 큰일을 맡으려면 학문이 깊어야 한다”고 말했고, 여몽은 왕의 충고를 받아들여 열심히 학문을 닦았다. 평소 여몽을 경시했던 재상 노숙은 학식이 풍부해진 여몽을 보고 깜짝 놀라며, “士別三日(사별삼일) 卽當刮目相對(즉당괄목상대)”, 즉 `선비라면 사흘만 떨어져 있다가 만나도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며 감탄했다. 이후 여몽은 촉의 관우를 사로잡는 등 수차례 큰 공을 세워 오나라의 명장이 되었다.

삼일이라는 짧은 시간만 지나도 학문이나 인품 등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로 달라진 것을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고도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여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뜻하는 `일취월장'은 중국 주나라 제2대 성왕이 한 말이다. 신하들이 성왕의 국가 경영에 대해 우려하자, 성왕은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日就月將(일취월장) 學有緝熙于光明(학유집희우광명), 즉 쉬지 않고 노력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학문을 쌓고 넓혀서 광명에 이르리라.”

이처럼 나날이 새로워지고 더욱더 발전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본질이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한 줄도 모르는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매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결코 살아 숨 쉬는 삶이 아니다. 비록 그 겉모습은 어제와 동일한 형태를 반복한다고 해도, 그 마음만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해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낳은 발전적인 삶이 가능하다. 이 같은 삶의 자세를, 사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즉 매일 매일 새로워지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다.

매일 아침을 생애 최초의 아침처럼 맞이하기 위해선, 과거의 지나간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된다. 과거에 연연해하고 집착하는 마음은 결코 새로워질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다. 따라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담보해내는 첫 단추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마음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내혁(內革)이다. 과거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갓난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내혁'이 곧 `심령이 가난한 자'로의 거듭남이고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는 일'이고, 그 어떤 정형화된 틀도 고집하지 않는 `군자불기(君子不器)며, 'NO-FRAME'이다.

내혁은 과거의 기억뭉치인 업식의 꼭두각시가 되어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데서 시작된다. 이 같은 까닭에 맹자님은 울 밖으로 뛰쳐나가 이리저리 날뛰는 닭이나 개는 찾을 줄 알면서, 어찌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르느냐고 탄식하신 뒤,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다. “學問之道(학문지도) 無他(무타) 求其放心而已矣(구기방심이이의)”, 즉 “학문의 도는 별다른 것이 없다. 잃어버린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이 글과 인연이 닿는 모든 독자들이, 매 순간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매 순간 어떤 생각과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는지 즉각 알아차리며 온전하게 마음 챙김 함으로써, 일신우일신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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