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씨
등나무 씨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1.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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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무 가운데 콩과가 의외로 많다. 콩이라면 논두렁에 심어놓은 풀로 생각하지만, 문제는 열매의 형태가 콩처럼 깍지가 씌워 있는 종류의 식물을 모두 콩과로 분류하기 때문에 나무 가운데에서도 콩과가 적지 않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두 나무의 꽃향기가 우연히도 모두 콩과라서 더욱 관심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자귀나무는 분홍 꽃을 피우고, 등나무는 보라 꽃을 피운다. 분홍색 자귀나무 꽃향기는 산뜻하면서도 여성적인 풍미를 보이고, 보라색 등나무 꽃향기는 깔끔하면서도 남성적인 박력을 보인다. 자귀나무 꽃향기는 약간은 복합적이면서도 부드럽지만, 등나무 꽃향기는 다소 직설적이지만 깔끔하다. 둘 다 가볍지만 솔직하며, 둘 다 매력적이면서도 뒤끝이 없다. 콩과답게 둘 다 깍지 속에 씨앗을 품는데도 등나무는 참으로 독특한 방식을 보인다.

포도처럼 열매가 열린 듯 피는 등나무 꽃은 말 그대로 주렁주렁 달린다. 그때에는 벌도 많이 꼬인다. 꽃핀 등나무 밑에 한참 동안 앉아있다 보면 벌 소리에 귀가 멍할 정도다.

5월에 꽃이 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데, 신기한 것은 씨앗은 한참 추워진 동지 녘에 가서야 익어 떨어진다는 점이다. 사람처럼 말하면 임신기간이 8개월이나 되는 셈이다.

깍지 속 씨앗은 마치 호박씨처럼 크고 검다. 씨를 먹기도 하는데, 심을 때는 80도 정도의 물에 담가놓아야 바로 발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등나무는 어떻게 자신의 씨를 널리 퍼뜨리려고 할까?

관찰1) 깍지 아래 끝에는 화살촉처럼 바늘이 달려있었다. 가시는 분명 익기 전에 자기를 해코지하지 말라는 것일 텐데, 그대로 떨어졌다가는 아래에 있는 동물을 무척이나 아프게 할 것이었다. 그런데 떨어지면서 그 촉이 땅에 부딪히면서 산개하는 것 아닌가?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한 터짐, 그리고 그 뇌관역할을 하는 것이 깍지 끝의 화살촉이 아닐까 싶었다.

관찰2) 등나무 쪽에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지면서 터지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이미 나무에 매달린 채로 터지는 것이었다. 깍지가 터지면서 씨앗을 10여 미터 이상 튀게끔 했다. 그 비결은 몸통을 꼬듯 깍지도 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다했을 때, 마지막으로 터졌다. 어떤 깍지는 매달려 있었고, 어떤 깍지는 씨앗과 더불어 튕겨나갔다.

아무래도 관찰2)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화살촉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화살촉은 꼬는 힘이 부족할 때 지상낙하용으로 쓰는 것 아닐까. 아무쪼록 씨앗은 멀리 보내야 하기 때문에.

위대한 자연이고, 신비로운 그것의 의지다. 식물이 의지가 없다는 것은 식물이 이렇게 최댓값을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 금방 반박된다. 진화론적으로는, 그렇게 멀리 보내는 놈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놈은 죽게 되었다는 `자연선택'으로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여기서 빠진 설명은 멀리 보낸 놈이나 그렇지 못한 놈이나 모두 넓게 퍼트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것을 `식물의 의지'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모든 동물이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터지지 않은 콩깍지를 방으로 가져다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와보니 콩깍지도 그렇고 씨앗도 그렇고 온 방으로 튀어버렸다. 내게 신기하게 비춰진 것은, 몸을 꼬는 힘으로 깍지조차 꼬는 일이었다. 알다시피 목재구조물로 등나무 넝쿨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웬만한 철골구조물도 쉽게 버티지 못한다. 이렇게 등나무는 자연을, 우주를 껴안고 있었다.

나도 등나무처럼 세상을 껴안고 싶다. 등나무 깍지처럼 자신을 터뜨릴지라도.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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