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한파
기부 한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1.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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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취재3팀(부국장)
김금란 취재3팀(부국장)

 

배 주린 설움도 겪어본 사람만 안다. 오죽하면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고 했을까.

얼어붙은 경기 탓인지 기부 한파에 사랑의 온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8일 기준 전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8일 기준)는 83.3도. 그러나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는 67.4도에 머물고 있다.

2018년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31일 강정 신언임 여사가 충북대를 찾았다.

충북대의 어머니로 불리는 신 여사는 이날 어려운 환경으로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8억 원 상당의 장학기금을 추가 기탁했다. 그동안 신 여사가 대학에 기탁한 금액은 43억여원. 배를 움켜쥐며 모은 그녀의 전 재산이다.

신 여사의 힘든 삶은 글로도 옮겨 적지 못할 만큼 고난 그 자체였다. 올해로 87세를 맞은 그녀는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청원군 오창면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내쫓긴 그녀는 시장 어귀에서 까치 담배 장사부터 시작해 만물상회를 운영하며 억척같이 돈을 모았다. 뱃속을 채우는 돈도 아까워 하루에 한 끼만 먹어가며 그렇게 돈을 모았다. 청주의 구두쇠 할머니로 불리었지만 늘 당당했다. 떳떳하게 번 돈이기 때문이다. 쓸 만큼 벌었으면 힘든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법한 데 없는 사람 심정은 업어본 사람만 안다고. 신 여사는 자신의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993년 충북대에 전 재산을 기부했다.

신언임 여사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기탁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베풂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충북대 대운동장 뒷편에 가면 대학에 전 재산을 기탁하고 떠난 독지가들의 묘가 있다. 그곳엔 가졌지만 움켜지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어줄 줄 아는 마음의 부자들이 잠들어 있다.

요즘도 얼굴없는 천사들의 잇따른 기부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기부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대신 때아닌 유튜브 전쟁으로 정치판이 들썩인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2020년 4월15일 치러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해 시작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홍카콜라의 유튜브 전쟁은 미니 총선으로 불린다. 총선까지 1년4개월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폐업을 고민하고, 학부모들은 입시 전쟁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정치인의 눈과 귀는 총선에 쏠려 있으니 국민의 삶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차라리 두 거물 정치인이 유튜브에서 서로 구독자만큼 기부를 이끌어내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했다면 박수라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유시민 이사장의 알릴레오 방송에 대해“조회수가 200만명이 넘고 구독자 50만명이 넘었다던데 거대한 화산이 폭발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탄 한 장이면 힘겨운 겨울을 나는 어르신 방에 8시간의 온기를 전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터진 화산 폭발이 왜 기부자들의 마음은 녹이지 못할까? 겨울 한파에 마음의 보릿고개가 되레 헛헛함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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