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기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기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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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시청 부근 비어있는 건물 2층 창문에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라는 글귀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때 경제부총리를 지냈고, 3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우리 지역의 큰 인물이 사용하던 사무실에 흔적처럼 남아 있는 `고향'과 `사람'의 열쇠 말은 어쩐지 처연하다. 역사에 그분이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관료와 선량으로 지내는 동안 고향과 나라를 위한 어떤 업적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청주출신'이라는 수식어가 어김없이 따라붙는 노영민 주중대사가 예상대로 문재인 정부 2기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고향'의 이름으로는 기꺼이 반가워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국정지지도가 아직 데드크로스(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선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무겁다.

나라는 지금 엄청난 역사의 분기점에 처해있다.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는 질타에도 아랑곳없이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며 건국절 운운했던 적폐가 탄핵되고 비로소 온전한 정신으로 100주년을 마음껏 기념할 수 있음은 바른길을 찾은 역사적 과정의 중요한 하나일 뿐이다.

그보다는 너무도 바꿀 것이 많은 세상에서 그동안 우리가 아무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한 채 살아왔음을 깨달으며 제대로 바꿔야 하는 역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마침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한반도의 평화를 항구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비핵화와 북한의 개혁 개방을 통한 원대한 포부를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호령하는 번영의 길도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무거운 사초(史草)에는 담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드는 현실경제에 대한 불만과 대기업위주 성장 중심의 낡은 경제체제로의 회귀 욕구를 차단하면서, 극심한 소득불균형과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그리고 토지와 금융 등 가진 자들에 의한 무노동 재산증식의 굴절된 탐욕을 차단해야 하는 절대적 정언명령인, 소득주도 성장의 주저함과 중단이 없는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도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써내려가야 할 역사책에 빈칸으로 무겁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흥망성쇠의 역사적 명운이 교차할 수 있는 대변혁의 시대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설득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고, 이를 교묘하게 선동하는 극단적 보수언론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는 여론의 향방에 속수무책인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고향사람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벼슬이 더 무거운 것은, 지연(地緣)이라는, 보이지 않지만 모질게 끈적거리는 기대와 욕망에서 기인한다. `충북출신이 단 한 명도 없던 청와대에서 한 줄기 단비 같은 희망'이라거나, `비서실장 등용으로 인한 충북의 정치지형의 큰 변화' 등을 예견하는 지방언론의 뜨거운 찬사가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동안의 충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하이닉스 반도체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기반도 부족하고 번영을 뒷받침할 자원 역시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나마 이만큼의 살림살이 형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차라리 다행으로 여길 일이다. 자원과 기반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 즉 인재양성이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지도층은 고집스럽게 외부 수혈을 하는데, 정작 in서울에 성공한 지역의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대학 졸업 후 돌아올 수 있는 고향에 대한 비전은 없다.

지방은 정치권을, 그들의 예산낭비와 무능에 대한 비난을 전혀 서슴지 않으며, 정작 자기 지역 출신의 지역예산에 대해서는 무작정 환호하는 이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노영민이 해내야 할 일은 `고향'을 뛰어넘는 `치국과 평천하'에 해당한다. 고향 사람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온 국민과 세계를 대하는 냉정이 필요하다. 차라리 노영민에게 어떤 특별한 혜택을 기대지 않고 `고향'으로 당당하게 서는 길. 그리하여 그가 되돌아 볼 수밖에 없는 고향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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