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어머니를 생각하다
새해, 어머니를 생각하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19.01.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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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왔다. 푸릇푸릇 초록이 번지던 봄날에 상경한 후 한층 깊어진 눈빛을 담고 내려왔다. 방학도 했고, 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와 술 한 잔도 하고 싶었다며 아이는 너스레를 떨었다. 오랜만에 부모 품을 찾아온 녀석이 첫눈만큼이나 반가운데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을 함께 하니 더할 나위 없다.

퇴근과 동시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장을 봐 왔다. 서너 가지 국물을 섞어 쌀을 씻어 안치고 엄마표 묵은지 갈비찜도 냄비에 올렸다. 지난주 지인으로부터 얻은 알배추를 꺼내 통깨를 듬뿍 넣고 겉절이도 무쳤다. 집 밖에서 해결하는 삼시세끼가 오죽할까 싶어 아들 입맛에 딱 맞춰 따뜻한 집 밥을 차려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처럼 완전체가 되어 온기로 가득한 식탁 앞에서 송구영신을 함께했다. 그 옛날 나의 어머니가 자식들과 그러했듯….

어머니는 늘 한 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면 며칠에 걸쳐 집안을 쓸고 닦으며 대청소를 하셨다. 부엌의 선반 위 해묵은 그릇들을 꺼내 윤을 냈고 장롱의 이불들을 죄다 끌어내 노루꼬리보다 짧다는 겨울볕에 널어 먼지를 털어낸 후 널고 접기를 수일 반복했다. 그리고 농사지은 재료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놓고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가마솥을 걸어놓은 맨 끝 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어머니는 한나절 두부를 만들고 또 하루는 조청을 고왔다. 집 근처에 있는 오래된 방앗간에 들러 가래떡을 뽑아 오는 것도 꼭 송년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저녁에는 김장김치와 두부를 다져 만두를 빚고 온 가족을 밥상으로 불러 앉혔다. 떡만두국 한 그릇에 지난해의 고단함은 사라지고 새해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겨났다. 참 이상하게도 밖에서 먹는 밥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는데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 배가 불렀다.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녹아든 보석 같던 시간은 내가 결혼으로 집을 떠나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에 대한 또 다른 새해 첫 기억은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 풍경이었다. 머리에는 무언가를 잔뜩 이고 대문 밖을 나선 후 몇 시간 후에야 들어오셨다. 어찌나 이른 시간인지 시계를 보지 않으면 흡사 한밤중 같았다. 유년을 한참 벗어난 뒤에야 그날은 어머니가 마을 앞산에 있는 절에 다녀오신 것임을 알았다. 식구들도 잠들고 마을도 잠들고 세상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어머니는 절에 가셨다. 절 입구에 도착하면 설핏해가 서서히 꽃처럼 피어오르는 시간이었단다. 어머니는 이고 온 쌀자루를 시주로 내려놓으며 부처님께, 산신께, 그리고 떠오르는 해에 온 가족의 안위를 기원했단다. 그렇게 오랜 세월 홀로 묵묵히 해돋이를 하셨고 그 정성인지 자식들은 저마다 길을 곧게 걸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뜨거운 이름이지 싶다. 지금도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어머니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늘 기댈 언덕이고 든든한 나무다. 새록새록 내 삶에 다리를 놓아준다. 한해를 온 가족들과 든든한 집 밥 한 그릇으로 시작한다. 가족들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집안을 온기로 채워놓는다. 백 마디 말보다는 따뜻하게 손을 한 번 더 잡아준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배웠다. 어머니가 교실이고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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