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면
어느 한 가지를 꾸준히 한다면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9.01.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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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얼마 전에 학교 유선 전화로 소윤이가 연락을 해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했던 아이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멕시코에 교환학생으로 갈 때 만난 것이 끝이었는데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하여 곧 러시아로 갈 예정이라 한다. 폭포수같이 쏟아내는 그간의 사연은 여고생 소윤이의 열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그 열정을 주체하기 어렵다며 웃는,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상기된 목소리가 나의 뇌 어느 부분에 막 연결되어 익숙하게 변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나를 찾게 된 경로까지 줄줄이 이야기한다.

“네이버에 선생님 이름을 쳤어요.”

외국에 여러 번 오가며 내 전화번호를 잊었던가 보다. 나를 찾은 건 충청타임즈에 쓴 내 글 덕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네이버에서 찾니?”

웃음이 나온다.

3년 전 봄이었다. 내 글이 처음으로 신문에 나왔을 때 며칠 동안이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필명 뒤로 숨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하게 지인에게 작명을 부탁했더니 보내온 이름이 규원(葵圓)이었다. 해바라기 규(葵)에 둥글 원(圓), 여전히 모난 부분이 많아 더 둥근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소망과 해바라기에 알알이 많은 씨앗이 영글듯 좋은 글을 많이 쓰라는 축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필명조차 내겐 건방지다 생각되어 선뜻 정하지를 못했다. 또 수필가라는 타이틀은 너무나 높아 감히 내 이름 옆에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교사라고 밝혀 놓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글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있는 사실을 쓰는 것 외에 전혀 꾸밀 줄 모르는 솜씨도 답답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아질 거라 기대할 수 없으니 더욱더 답답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나는 글밭이라는 근사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슬쩍 끼워놓으며 함께 만찬을 하려는 파렴치한 같아, 그들의 매끈한 재주에 주눅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개 숙이고 그냥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금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선뜻 내세우기 어렵던 작가라는 꿈이 이슬비처럼 나를 적시는 것이다. 너무나 멀어 보였던 꿈이 어느새 옆에 와서 친근하게 속삭인다. 자연스럽게 스미듯이 왔다. 얼른 잡아야겠다는 조급함이나 욕심도 동행하지 않고.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때, 운전을 처음 배우던 때, 에어로빅을 처음 하던 때를 생각한다. 초보의 시간을 견디면 반드시 그다음 익숙함의 시간이 온다. 매번 넘어졌지만 결국 자전거 균형을 잡게 되었고, 모든 베스트 드라이버에게 초보 시절이 있었다. 에어로빅 교실 맨 뒷줄에서 어색한 몸놀림을 했던 시기를 지나, 서서히 앞줄로 나아가고 결국 맨 앞줄에 서게 된 과정을 기억한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당연한 순리를 기억한다면, 어눌해 미치겠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조금 생긴다.

최근 김미경 강사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강렬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는데, 끊임없이 자신의 무능과 맞서라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우리는 아는 것, 쉬운 것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니까, 어려운 것이니까 공부한다고.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아는 것, 쉬운 것, 잘하는 것에 머물고 싶은 생각을 자꾸 하니, 아는 것도 다시 깨우쳐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나의 무능과 맞서고 있다. 둥글고 커다란 해바라기같이 알알이 실한 열매를 맺는 그날을 기대하며 초보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또 제2의 소윤이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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