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받는 횟수라도 줄입시다
스트레스받는 횟수라도 줄입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1.06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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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경북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 중이던 미국에서 벌인 추태는 `과연 우리 사회는 달라지고 있느냐'는 의문을 다시금 갖게 한다. 부의장은 만취 상태에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해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몇몇 의원은 가이드에게 여자가 있는 술집을 안내하라고 졸랐다고 한다. 호텔에서는 객실 문을 열어놓은 채 시끌벅적한 술판을 벌이고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녀 다른 숙박객들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군의원 8명이 의회사무국 직원 5명을 대동하고 7박10일간 미국과 캐나다에서 진행하던 연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금 나라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곤두박질하는 실업률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해외에 나가 혈세를 펑펑 써대며 나라 얼굴에 먹칠만 하고 돌아온 이들에겐 남의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민의의 대변자를 자처하니 혀를 찰 일이다.

국회는 물론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세금만 잡아먹는 관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논란이 돼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 20여년간 지적돼온 적폐 중의 적폐로 꼽힌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지고 정치권에서는 반성과 개선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때뿐이고 똑같은 일이 거듭되곤 했다.

선거 때는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해외연수를 비판했던 후보도 당선만 되면 슬그머니 탁류에 몸을 맡겨 버린다. 유권자의 질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들의 두꺼운 낯과 몰염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무엇보다 국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윗물이 탁한 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정당출신 대부분 지방의원은 자신을 공천하고 밀어준 국회의원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들에게 본받아야 할 규범이자 철칙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예속관계로 인해 지방정치의 질은 중앙정치의 질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는 지방정치를 선도할 의무감을 포기한 지 오래다. 지방의회에 정도(正道)를 제시할 역량도 의지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해외연수에 나선 지방의원들의 탈선도 국회의 폐습을 고스란히 답습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생색을 낼 일정 몇개 끼워넣고 나머지는 관광지 순회로 채우는 것부터 판박이다. 요즘에는 아예 여행사 관광상품을 구매해서 연수로 각색한다. 사후 제출해야 하는 연수(출장)보고서는 사무과 직원에게 맡기거나 다른 지방의회 것을 베끼기 일쑤다. 국회의원들은 현지 대사관이나 공항 직원에게 갑질을 하다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이번에 예천군의원은 가이드에게 주먹질로 갑질을 함으로써 보고 배운 바를 제대로 실천했다.

지난 연말 진행 중이던 본회의에 불참하고 베트남 출장을 강행한 한국당 의원들이 호된 비판을 받았다. 사회적 관심사였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과 유치원 3법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벌이던 시점이었다. 두 법안을 다루는 환경노동위와 교육위 소속 의원까지 일행에 포함돼 비판의 강도가 더 높았다. 이들의 베트남 스케줄에서 의정을 보이콧하면서 까지 참가해야 할 절실한 일정은 보이지 않았다. 지방의회가 따를만 한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의 현주소가 이렇다.

그렇다면 정부라도 나섰으면 좋겠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의회 출범 초기에 해외연수를 임기 중 1회로 정했다가 얼마 안 돼 매년 추진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질 떨어지는 연수와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일상처럼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자초한 것이다. 이 때문에 4년 임기 중 1회로 묶었던 종전의 룰로 되돌아가자는 대안이 제기된 지 오래지만 정부는 여태껏 묵묵부답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이런 미스터리가 없다. 재차 촉구컨대, 정부는 결단을 내려 유권자들이 스트레스받는 횟수라도 줄여주길 바란다. 1년에 한 번씩 주변 눈치를 살펴가며 구차한 외유를 떠나는 지방의회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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