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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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1.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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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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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있나 보다.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어느새 가까이 다다라서 시간을 알려준다. 조금씩 움직이는 공간 사이에 무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긋한 눈으로 내려다볼 뿐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시계와 밀접한 관계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시계는 알 수 없는 무게와 일정한 길이의 생명력까지 지녔다. 우리는 거스를 수 없이 그 길을 따라간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에 후회를 하면서도 또다시 올 시간에 고개를 내밀어 보이는 나 자신이다. 때로는 매달리기도 하며 버려두기도 한다. 바쁠 때 시계의 움직임이란 돌아볼 겨를 없이 뛰어가는 것 같더니 버려둘 때의 느낌이란 게으른 형상으로 여러 갈래 길을 만들어 놓고야 만다.

시계는 사람과 같은 생명이 있다. 시간을 생산해 낸다는 자체가 오묘하며 과학적이다. 우리 역시 시계처럼 정해진 발걸음으로 삶이란 길을 향해 가고 있다. 가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도 일으킨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실체 앞에서는 달아나지 못하며 숨을 수도 없다.

만약 시계가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삶의 리듬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생겨날 뿐 아니라 미로 속에 헤매는 일들이 무수히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세포처럼 각인된 그동안의 기억들은 제자리를 찾느라 얼마나 분주해질까. 이처럼 멎는다는 것은 새로운 혼란이며 복잡한 상황에 다다를 것이 뻔하다. 시계와의 필수적인 동행,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무의미함에서 멀어지자고 하는 자기만의 몸부림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요즘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나를 깨운다. 어둠을 가르며 미세한 음성으로 일어나라는 신호를 하고 있다. 눈을 비비며 잠자리를 털어낸다. 그렇게 하루를 열어가는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나와의 약속이었으며 엄숙한 시작이 되도록 해 주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이어간다. 생각할수록 살아 있다는 것에 신성함을 깨닫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고들 한다. 저마다 지닌 삶의 시계들이 다양할지언정 똑같은 시간에 낮과 밤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고나 있을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의 질량과 길이마저 같다는 것을 느끼고나 있을까. 어떤 이는 잘 활용을 하고 어떤 이는 불합리하게 보내기도 할 것이다. 모두 시간이 지닌 참된 의미를 소중하게 여기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어느덧 인생의 완만한 고개에 다다랐다. 협곡은 아니었지만 가파른 길도 있었으며 평탄한 길도 있었다. 조심하며 한 발씩 옮겨온 시간들이다. 말하지 않아도 인생의 시계는 그동안 걸어왔던 내 삶을 세상이란 창가에서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 상황을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견고했던 육신의 장막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며 의기마저 소심해지는 것을 스스로 체험해 가는 순간이다.

시계가 가르쳐주는 시간의 흐름을 보았다. 다양한 물결이었다. 빠르기도 하며 느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여 있기도 하고, 소리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무수한 모양이었다. 숨을 고른다. 여전히 시계는 내 곁에서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보폭을 좁히며 나도 따라간다. 영혼의 새로운 동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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