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까만 밥!
도토리 까만 밥!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19.01.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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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어렸을 적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 이웃집 할머니께서 밥 먹고 가라는 말에 밥 한 그릇 얻어먹었다. 흰 쌀밥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보리쌀에 거뭇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쓰고 떨떠름한 맛에 까만 밥, 도대체 이게 무슨 밥일까?

시골집 바로 아래쪽, 아이들 팔로 두서너 아름되고 가운데가 썩어 구멍이 뚫린 커다란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정월 초 할머니께서 왼 새끼 꼬아 둘러메고 하얀 한지 몇 개 꽂아 넣은 다음 시루떡 앞에 놓고 치성드리던 나무였다. 나에게는 여름 방학 때마다 나오는 곤충채집 숙제하기 좋은 장소였다. 사슴벌레, 장수말벌, 각종 풍뎅이 등 온갖 곤충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줍다 주울 것이 없으면 마음 급한 사람들은 떡메로 참나무를 두들겨 팬다. 그때 생긴 상처에 흘러나오는 참나무 수액을 먹기 위해 많은 곤충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큰 나무의 후손으로 보이는 좀 작은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수십 그루가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엄청난 양의 도토리가 떨어졌다.

이웃집 마당에는 어린애 크기만 한 커다란 단지 몇 개가 있었다. 도토리를 담아 놓기 위한 단지이다. 아이들은 등교 전 새벽에, 또 학교 다녀오자마자 도토리를 주워 마당에 말린다. 껍질이 갈라지면 하나하나 껍질을 깐 다음 물이 담긴 큰 단지에 담아 놓는다. 떫은맛을 내는 탄신 성분을 우려내기 위해서이다. 그런 다음 절구에 찧어 녹말을 걸러 묵을 해먹는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도 버리기 아까워 밥에 넣어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껍질을 까야 했던 것이고. 지금 노인들도 그 밥을 먹어 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가난했던 부모 세대들의 먹거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별미인 묵은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묵은 도토리로 만드는 도토리묵이 대표적이지만 녹말을 얻는 곡물의 재료에 따라는 메밀묵, 녹두로 만드는 청포묵, 밤묵, 옥수수로 만드는 올챙이묵(올챙이국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모두 녹말의 몇 가지 특성을 이용해 만드는 음식이다.

첫째 녹말은 찬물에 녹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녹말을 얻고자 곡물을 빻아 물에 담가 고운 천으로 거른다. 이때 찬물에 녹지 않는 고운 녹말만 천을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녹말을 물과 함께 가열하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녹말 입자가 부풀며 점도(끈적거리는 정도)가 높아져 풀처럼 되고(녹말의 호화), 이렇게 점도가 높아진 것을 온도를 낮추면 녹말이 다시 서로 붙어 굳어져(응집, 조직화) 물에 녹지 않는 덩어리가 되는(녹말의 노화) 녹말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 조상은 경험을 통해 물질의 특성을 이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화학계에서는 녹말의 특성을 이용해 `바이오 플라스틱'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옥수수 녹말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폴리유산(PLA)이 만들어지면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썩는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것이다. 빨리 실용화돼 환경오염을 줄였으면 좋겠다. 다람쥐에게 미안하지만 주워둔 도토리로 묵 쑤어 먹어 볼까? 화로라도 있으면 군밤도 구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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