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랬다
누군가는 그랬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1.01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차를 타고,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문득문득 생기는 물음들에 대한 대답에서 나온 생각들이다. 그 언제였을 그때는 이곳이 허허벌판이었을지 모르고, 울울창창한 숲 속의 어느 곳이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처음이란 것이 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말이다.

언제나 다짐의 시작은 창대했다. 하지만,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작아지고, 걸음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 다짐들은 허공 속으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 어느 날 다짐들이 생각날 때면 부유하고 있는 그것들을 다시 또 붙잡아 마음을 다잡아 보며 새롭게 시작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어리석음의 탑만 높아질 뿐이었다.

드디어 기해년,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아니 어리석은 탑의 첫 단을 쌓을 새날이 밝았다.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일랑 말아야지'라는 말을 먼저 자신에게 확인시켰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가만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그랬던 듯하다. 아주 쉬운 계획만 세우자고 해놓고, `행복해지자'라는 플래카드를 가슴 정 중앙에 단단히 세워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며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기만 하자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어디 행복이란 것이 `행복해 지자!'하면 될 것이란 말인가. 가슴에서 머리의 거리가 그리 멀다 하더니만 생각대로 안 되는 게 마음이었다. 지난해 정초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했고, 세상의 불행은 모두 그러모은 듯 괴로운 나날을 꽤 오래 보냈다. 그런 중에 새로운 일들을 맡으며 마음도 다스리게 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아니 줄이면 될 줄 알았다. 너무 바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낸 한해를 뒤로하고 또 새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백세의 노교수를 알게 되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교수님은 우연히 보게 된 방송에서 강의하고 계셨다. 깔끔한 양복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백세라기에는 믿기지 않는 모습의 김형석 교수님이었다. 강의 주제는 행복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올해도 그 노교수님을 알지 못했다면 분명 `행복'을 올해의 계획으로 잡았을 것이 분명하다.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백세를 맞으셨다. 그분의 말을 빌리자면 행복은 인격이며, 그 인격이 감동하지 못하는 행복은 실패라고 하셨다. 또한 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은 자신의 가족보다 사회를 위해 봉사할 때 느낄 수 있으며, 교육자는 자신의 제자가 사회를 위해 봉사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는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의 수치가 높아지는데 문학, 예술적 가치를 함께 할 때 행복의 수준도 더불어 높아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의 인격은 최고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일을 시작할 때 경제적 요건을 먼저 보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이 자신을 얼마나 즐겁게 할까를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반박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일에서 찾는다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을까.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은 따라온다는 노교수의 말씀처럼 말이다. 많지 않기에 그 누군가일 수밖에 없는 행복의 길, 이제부터라도 나도 그 누군가가 되고 싶다.

기해년, 내 행복을 만드는 길이 아닌,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힘쓰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어차피 한 번의 실패(작년의 다짐 `행복해지자')를 맛보지 않았던가.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하다 보면 내 행복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백세 노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새해 아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