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보다 경청의 자세를
반박보다 경청의 자세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2.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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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오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다. 말이 출석이지 국회의 소환을 당했다고 하는 것이 맞다. 무술년 마지막 날 청와대 특감반 사찰 의혹 해명을 위해 민정수석이 국회에 서는 굴욕적인 장면은 문재인 정부의 올해를 결산하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국민들이 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삶을 누리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들은 실현됐을까. 긍정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수표가 됐다는 박한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국민이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어둡고 차갑기만 하다.

실업률은 18년 만에 최악이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2000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다고 한다. 상·하위 소득격차도 역대 최악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인 가계부채 역시 계속 불어나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은 72%로 20년 만의 최저를 기록 중이다. 증권시장은 연초에 비해 하락률 17%를 기록하고 폐장했다. 하락 폭이 10년 만에 가장 컸다. 개선돼야 할 경제지표 대부분이 한해 내내 악화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출산율 하락세는 더 가팔라졌다. 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는지 모르지만 삶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수출 6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조선업에서는 7년 만에 수주국 1위에 복귀했지만 무너진 서민경제의 그늘에 묻혀버렸다.

초라한 성적표는 대통령 지지율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지지율 70%대로 새해를 열었다. 평창올림픽을 국제적 갈채를 받은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며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5월에는 80% 중반까지 치솟았다. 보수층의 66%, 한국당 지지자의 40%, TK지역의 70%가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6월 지방선거에서는 보수를 재기 불능의 수렁에 빠트리며 전대미문의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파죽지세는 이곳에서 멈췄다. 여권은 과분한 국민적 지지를 겸허한 자세로 성찰하는 대신 20년 집권론을 운운하는 오만한 자세로 경시했다. 지지율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그나마 지지율을 지탱하던 북핵 문제까지 교착에 빠지며 낙폭이 커졌고 급기야 엊그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드 크로스'에 도달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지난해 집권 후 최저 수준이다.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은 바로 이 벼랑 끝에서 이뤄졌다.

그런데도 여권 내부에서는 “그래 봤자 역대 정권의 평균치”, “그동안 뿌린 소득주도 경제정책들이 결실을 일굴 내년 초부터는 반등할 것”이라는 자위의 말들이 들려온다. 밖에서는 2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냉정한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권세력의 안일함은 무엇보다 나라의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올해의 부진과 실책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촘촘하고 현실적인 새해를 설계할 수 있다.

내년에는 경제 못지않게 개혁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 사법개혁은 답보 상태이고, 정치개혁은 군소 야당들에 주도권을 뺏긴 모양새다. 낙하산 인사조차도 개혁하지 못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지지율 하락을 부추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을 좀 더 진지하고 낮은 자세로 바라보길 바란다. 제기된 의혹에 “우리 DNA에는 그런 것 없다”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더 이상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국민들은 문제보다도 대응방식에 더 실망하고 있다. 국민이 당신들보다 더 지혜롭고 냉철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복종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라고 말로만 되뇔 것이 아니라 협치에 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오늘 조 수석에 대한 야당의 공격은 사찰 의혹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공세가 거칠고 모멸적이더라도 반박이나 방어보다 경청의 자세를 보였으면 좋겠다. 그 책망들 중 일부는 국민의 뜻과도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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