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12.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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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회색빛이 도는 마른 겨울아침, 등산로 어귀에 섰다. 오색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산행의 매력도 있지만 겨울나무가 좋다.

무성했던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빈 가지 사이에 바람이 살살 흔들어대는 잔가지가 매혹적인 겨울, 겨울산행의 묘미다. 칼바람을 맞으며 눈 덮인 겨울 산을 올라 한 해를 마무리해 본다.

망루에 서서 뒤돌아보니 연초에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연말이 되면 부실한 성과에 변명하기 일쑤다. 선조는 하고 싶은 일에는 길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고 했는데 네가 딱 그 짝이다.

악기를 배우겠다고 사들인 기타, 사물놀이를 하겠다고 산 장구, 북 집안 구석구석 악기는 물론 미술용품들이 먼지를 뽀얗게 안고 있다. 욕심이 앞서 되지도 않은 악기와 미술, 모두 소화하려니 동분서주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 했지 도무지 되는 게 없다.

양손 가득 쥐고 안달을 하던 나, 뒤돌아보니 소리만 요란했지 실속이 없는 빈 수레였다. 어렵사리 주변정리를 하면서 하나하나 내려놓자 이제야 길이 보였다.

오늘따라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청년이 부처를 만나러 가는 태국의 설화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청년이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 날이 저물어 부잣집에 하룻밤 신세를 졌다.

수심 가득한 부잣집주인은 딸이 평생 말을 한마디도 안 한다며 부처를 만나면 왜 말을 못하는지 물어봐 달라고 청한다.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큰 산이 가로막아 난감에 처해있을 때 마술지팡이를 든 마법사가 나타나 쉽게 산을 넘어갈 수 있게 도왔다.

마법사는 끝없이 수행을 하고 있음에도 열반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부처에게 물어봐 달라고 했다. 또다시 큰 강을 만난 청년이 낙심하고 있을 때 거북이가 나타나 등에 태워 강을 건네 주었다. 거북이도 주변 파충류들은 모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데 왜 자기만 승천을 하지 못하는지 부처에게 꼭 물어봐 달라고 청했다.

질문 세 가지를 안고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부처를 만난 청년에게 부처는 청년에게 3가지 질문만 하라고 명했다. 청년은 몹시 난감했다. 부처를 만나러 오는 동안 은혜를 입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다짐을 했으니 말이다. 청년은 도와줬던 이들의 질문으로 기회를 다 써버리고 정작 자신의 질문을 하지도 못한 채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청년은 거북이를 만나 그 딱딱한 등껍질이 문제이므로 껍질을 벗어던지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노라는 부처의 말을 전했다.

거북이는 말이 끝나기 전 껍질을 벗어던지고 하늘로 승천했다. 탐욕스런 거북이는 껍질 속에 수많은 보석을 숨겨놓고 있었다. 청년은 보물을 가지고 길을 재촉하던 중 마법사를 만났다. 부처께서 당신은 그 마법의 지팡이만 없으면 열반에 오른다고 했다는 말에 청년에게 지팡이를 주고 열반에 올랐다. 청년은 마법의 지팡이와 보석들을 가득 안고 처음에 묵었던 부잣집을 다시 찾았다. 부잣집주인은 청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댁에 딸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말을 하겠다는 굳은 신념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전했다. 순간 딸이 다가와 청년을 보고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라고 했다. 말문이 트인 딸을 보고 부잣집 주인은 크게 감동해 청년과 딸을 혼인시켰다.

자신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으러 떠났던 청년은 은혜를 갚고자 거북이와 마법사 그리고 부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며 모든 것을 얻게 되다. 청년은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았기에 사랑, 재력, 권력을 모두 성취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자신을 비우면 인생의 답이 보이고 비우면 채워진다고 한다. 아직도 채워도 빈자리인 것 같아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욕심을 채우려 갈구했던 나, 모든 것을 손아귀에 넣으려만 했지 내려놓을 줄 몰랐다. 내려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진정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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