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결실의 계절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12.26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안녕하세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환하게 인사하는 00씨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이 친구의 나이는 서른여덟.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8년이 넘은 한 아이의 엄마이다. 이 친구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4월의 어느 날 한겨울 점퍼를 입고 센터에 왔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00씨를 베트남 친구가 데리고 온 것이다. 얼굴에는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 인상을 잔뜩 쓴 상태로 만사가 귀찮은 듯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이것이 내가 그 친구를 기억하는 전부였다. 한국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데다가 물갈이로 얼굴이 뒤집혀 있는 상태였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에 시집와서 산다는 그 친구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말 한마디도 못하는 나이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데도 한 달이나 걸렸다. 한 달 후에도 자꾸 잊어버려서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같은 시기에 시집온 어린 친구는 간단한 대화가 되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과 실력이 느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그 친구를 보며 안타깝기까지 했다.

나도 젊어서는 기억력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던 사실도 자꾸 잊어버린다. 하물며 늦은 나이에 외국어를 모국어로 살아야 하는 그 친구 오죽 답답할까? 그러던 중 임신까지 하여 입덧이 심하다고 공부하러 오는 횟수도 줄어들고 배는 불러오는데 한국말은 전혀 늘지 않으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초급반 친구들은 다음 반으로 올라간다.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친구들과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다음 반으로 승급시킬 수 없었던 두 명의 친구 중에 한 사람이 이 친구였다. 자모음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친구를 중급반으로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장점은 그저 묵묵히 시키는 일은 잘한다는 거였다. 말이 안 돼도 자모음을 자꾸 잊어버려도 그에게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성실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다음 학기에도 다시 초급반에서 공부해야만 했던 그는 임신 중에서도 더 열심히 공부하러 나왔다. 아기 낳기 전날까지 수업에 참여하였으나 수업 일수가 부족하여 아기를 낳고 그다음 학기에 다시 초급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두 번 듣는 수업이라 이해도 잘 되고 체계적인 수업으로 한국어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3년 만에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와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꼈다. 3년 동안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친구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된다. 이제 그는 그동안 내가 가르친 이주여성 중에서 자음, 모음의 획순이 정확하고 글자도 가장 바르게 쓴다.

어느 날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센터에 왔다. 아픈데 집에서 쉬지. 왜 왔느냐는 내 말에 자신이 안 오면 선생님이 실망할까 봐 왔다고 대답했다. 한국어 공부가 아닌 인간관계 때문에 센터에 왔다는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이젠 진짜 한국 사람이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그 친구를 시장에서 만났다. 이젠 초등학생의 아들을 둔 학부모였다. 먼저 반갑게 인사한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한국을 이해하고 함께 공존하는 우리 이웃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에 뿌듯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