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친구와 함께 기차여행을 했다. 의자 배치가 서로 마주 보고 앉도록 되어 있어 친구는 기차 진행방향으로 앉고 필자는 맞은편에 앉았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에 마음도 여유로웠다. 산기슭에 집 몇 채가 보이더니 귀여운 강아지가 겅중거리며 뛰어다녔다. 미소가 절로 그려지는데, 갑자기 친구가 툭 말했다. “와! 개고기다!”
뭐? 개고기? 어떻게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바로 개고기라고 할 수 있을까? 경악을 금치 못하며 창밖을 보는데, 잠시 후 기차 진행방향의 역방향으로 앉아있던 내게도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계곡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 당시 마주앉은 친구의 시선 끝에는 아름다운 계곡이 보인 것이다. 사실 친구는 “와! 계곡이다!”라고 말한 것이었다.
쓴웃음이 절로 나며, 눈에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의식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사자성어 중에 구반문촉이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을 가지고 말한다는 뜻으로,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이렇다저렇다 논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학(大學)의 정심장(正心章)에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와 하버드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교수가 실험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영상이 있다. 흰옷 입은 사람 3명과 검은 옷 입은 사람 3명이 둘러서서 공을 서로 던지는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 흰옷을 입은 팀이 공을 몇 번이나 주고받는지 영상을 다 본 후 알려달라고 한다. 영상을 보는 대부분 사람은 갑자기 검은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나 가로질러 지나가는데도 보지 못하였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흰 옷을 입은 사람과 공을 주고받는 횟수에 집중하느라 버젓이 대놓고 가로질러가는 고릴라를 발견하지 못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입구에 걸린 루벤스의 명화 `키몬과 페로'는 젊은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젖가슴을 내놓고, 거의 벌거벗은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이다.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노인으로 볼 수 있는 이 그림은 사실상 실화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국왕의 노여움을 사서 교수형 될 때까지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여 굶어 죽게 된 애국자 키몬에게 해산한지 얼마 안 된 딸 페로가 곧 돌아가실 것 같은 아버지를 보러 왔다가 애끓는 마음으로 불은 젖을 먹이는 장면이다. 네덜란드인들에게 이 명화는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다.
갑자기 사자성어에 대학까지 언급되어 이 글이 `과학이야기'가 맞는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어느덧 한 해가 거의 지나고 새해를 며칠 앞두고 있다. 선택적으로 특정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우리 뇌의 인지능력과 정보처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새로운 한 해에는 진실을 모르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비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