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교묘한 인간
일상생활 - 교묘한 인간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8.12.25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약속된 시간보다 다소 이른 시간, 애매한 간극에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문을 연다. 바람은 제법 부는데 차갑지 않았다. 눈은 먼 하늘의 색을 머금고, 가슴은 바람을 삼키고, 걸음은 약속된 장소에서 멀어져 있다. 갈대 숲 사이의 모래 위에 발걸음을 내딛으며 바다 내음을 날라다 주는, 바람이 이는 곳으로 향한다. 잠시 난 시간에 뭐라도 볼까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고 좁은 가슴에 벅찬 바다를 담는다. 30분도 안 되는 짬, 난 섭지코지를 담았다.

긴 토론의 시간, 쉼 없이 달려 저녁시간의 술 한 잔은 몸을 쉬이 눕게 했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짝이 내어준 맥주도 마다한 채 잠에 빠졌다. 동이 트기 전 눈을 떴다.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가면 늘 버릇이 된 터이기도 하지만 뜨는 해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루는 시작되었고, 다음 일정 시작의 시각보다 많은 여유시간을 이용해 어제의 그곳을 다시 걷는다. 어제의 시간보다 넉넉함은 주변을 전해 주었다. 함께 걷는 짝이 있기에, 사소한 말다툼 끝에 배를 타고 먼바다로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갯바위에 올라서서 기다리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돌아온 남편을 향해 웃는 꽃, 해국의 이야기. 좁은 곶, 섭지코지에 드러내지 않는 화려함을 담은 건축, 어쩌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삶이 안도 타다오와 닮지 않았을까 공감하며, 구름이 해미이고 바다가 하늘인 거대한 화면에서 뻗어 나오는 햇살을 카메라로 담는 짝과 이야기를 전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다. 경관이 그랬고, 같이 걷는 짝이 좋았다.

그렇게 아름다울 것만 같은 시간은 가슴이 벅찬 것인지 답답해서 메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조금만 후미지다 싶으면 그곳은 쓰레기 더미였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내의 미소를 머금은 해국 옆에는 정성스럽게 무엇인지 모를 것을 담은 검은 봉지가 있고, 바람에 날려 온 가벼운 스티로폼과 비닐은 엉켜 갈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상황에 너무나 화가나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너무나 멋진 풍경의 극적인 이면,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담을 없애고 경계를 돌과 사계절 다른 색을 발하는 나무와 초본류로 꾸며놓은 터라 시간을 내어 주변을 가꾼다. 내가 아는 한 친구가 그렇듯, 나의 아침은 매일 빗자루가 들린다. 그렇게 매일 치워도 끝이 없는 담배꽁초는 부피가 작아 그나마 운동으로 여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검은 비닐봉지와 스티로폼 박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리배출에 누구보다 손과 판단이 빠른 나이지만 그냥 쓰레기 봉투행이다. 분리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이다. 연신 치워도 매일 생겨난다. 교묘하게 나무나 돌 틈에 끼워 넣는가 하면, 차가 세워졌던 자리에 내려놓고 차로 밟고 지나간다. 회사 앞 주목 사이에도 늘 담배꽁초가 쌓이고 주변이 온통 쓰레기 더미이다. 도로변의 쓰레기들은 바람에 의해 걷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옮기고, 사방은 온통 쓰레기다.

요즘은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보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것이 더 눈에 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도 교묘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쓰레기 봉투 값 아끼려고 그런다면 사서 나눠주고 싶다. 그런데 그건 아닌 듯하다.

양심이 없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이런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공간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보진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인간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