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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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8.12.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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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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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정 선생이 벽에 걸린 액자를 반듯하게 잡으려다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에는 액자가 비스듬히 누운들 어떠냐고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나 삐뚠 것이 보기 싫은 사람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것이 어찌 보면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액자가 삐뚤게 걸려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일까? 또한 액자는 언제나 벽에 반듯하게 걸려 있어야 한다는 그런 이유라도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 정 선생의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정 선생은 퇴직한 교사였다. 그는 옹고집 영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고집이 세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자주 마찰이 생기고 갈등을 일으키며 쉽게 갈 일을 어렵게 해결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몇몇 사람들이 정 선생과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하였다. 여느 때와는 달리 설악산을 횡단하는 종주였다.

드디어 버거운 일정을 짊어지고 일행은 산을 향해 앞으로 나갔다. 등산이 중반을 찍을 무렵 갑자기 부는 바람에 정 선생의 모자가 그만 날아가 버렸다. 해가 늦은 오후를 향해 성큼성큼 거슬러가는 시각이었다. 그 순간 정 선생은 모자를 찾으러 산골짜기로 발을 옮겼다. 그때 일행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말렸다. 날이 곧 어두워질 것이고 예정된 다음 목적지까지 계획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등산의 일정이 낭패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 선생은 모자를 찾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일행은 그의 이런 행동이 조금은 염려스러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정 선생에게 만날 장소를 일러주고는 산행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산골짜기는 이미 어두컴컴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찾으려고 하는 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이젠 별을 쫓는 어둠 속으로 끝내 기억은 끊어지고 정 선생은 모자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말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던 일행은 계획된 일정을 뒤로하고 정 선생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정 선생에 대한 염려와 불만이 투덜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밤새도록 정 선생과 일행은 어둠 속을 누비며 쫓고 쫓는 사람들이 되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어느 숲 속 한쪽에 쓰러져 있는 정 선생을 다행히 등산객이 발견하여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모자는 찾지 못했고 일행은 산행을 중도 포기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불만 가득 찬 일행 중 누군가 정 선생에게 그 모자가 그에게 무엇이었냐고 물었지만 정 선생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일행은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한 해를 보내며 크고 작은 일들이 스쳐갔다. 누구에게는 큰일이 쉽게 넘어갔고 누구에게는 작은 일이 어렵게 부딪힌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그 판단과 선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것은 곤란한 점들이 있겠지만 다만 어떤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 합리적 방향으로 대처했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며 곧게 갈 수도 있지만, 때론 한발 물러서서 포용하는 것도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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