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키운 미꾸라지인가
누가 키운 미꾸라지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2.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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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청와대 사찰 논란은 급기야 고소고발전으로 비화됐다. 청와대는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검찰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수사관과 호흡을 맞춰온 자유한국당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 공방전이 게이트가 될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지는 검찰 수사를 두고봐야 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아마추어 수준의 대응방식은 여러모로 우려를 낳고있다.

김 수사관은 “여권 인사의 비리를 첩보로 올리는 바람에 미운 털이 박혀 청와대서 퇴출됐다”는 주장으로 포문을 열었다. 우윤근 주 러시아 대사와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의 비리 첩보를 올렸으나 청와대는 묵살했다고 비난했다. 자신의 업무 목록을 공개하며 특진 약속과 함께 민간 사찰을 지시받고 그대로 수행했다고도 밝혔다. 목록에는 고건 전 총리의 아들과 민간은행장 등이 등장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자신의 비위를 덮기 위해 사실을 조작하며 폭로전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윤근 대사 의혹은 이미 검찰서 끝난 문제라고 했다. 민간인 사찰은 지시한 적도, 공식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김 수사관이 감찰활동 중에 우연히 확보해 보고한 민간인 정보는 내부 정리과정에서 폐기(kill)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해명은 방식과 내용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처음부터 김 수사관의 비위를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본질은 그의 주장의 진위 여부였으나, 징계를 앞둔 부패 공직자의 물귀신 작전으로 몰아가는 데만 급급했다. 폭로가 연일 이어지고 나서야 구체적인 해명이 시작됐지만, 오만한 발언들이 사족처럼 곁들여져 여론을 오도했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미꾸라지는 도대체 누가 키웠는가.

김 수사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청와대특감반에서 일했다. 민간인 사찰 오명을 썼던 전 정권의 특감요원을 그대로 기용한 것이다. 그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넣으라는 금언까지 부정하면서 청와대가 재 기용한 김 수사관은 지금 부당한 권력을 고발하고 준엄하게 책임을 묻는 의인의 모습을 하고 청와대를 공격하는 데 온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민간 사찰에 대한 DNA가 없다”는 김의겸 대변인의 말은 해명이 아니라 방자한 선언으로 들렸다.

김 수사관은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오고 내부에서는 필터링을 통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불합리한 과정이 반복돼온 점도 석연찮다. 강력한 제동이나 확실한 지침을 내려 도를 넘은 업무를 원천봉쇄 했어야 했다. 불분명한 해명이 의혹을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 청와대는 검찰이 우 대사 문제를 무혐의로 종결했다고 했지만, 검찰 수사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도공 사장이 같은 민주당 출신 의원의 커피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보고서를 쓴 당사자인 김 수사관이 업무에서 배제돼 처리를 유보했다”는 이상한 해명을 내놨다.

한국 갤럽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이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어설픈 대응으로 사찰 논란을 키우고 수세를 자초한 청와대 참모진의 안일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당이 임종석 실장과 조국 수석을 고발한 것은 “도대체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여권을 향한 조롱에 다름 아니다. 국민은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송년회를 갖고 실장과 수석들에게 “지치지 말고 일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변화와 성과를 기다리다 지쳐가는 국민들이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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