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아들이 아니다
딸은 아들이 아니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8.12.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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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요즘 한 달에 1, 2회 정도 인문학 독서 팀을 만난다. 아홉 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교육 관련 종사자로 대학교수를 포함하여 현직 중고등 교감, 교장이 대부분이고 나를 비롯해 두 명의 논술 강사가 함께한다. 국립대학에서 지원하는 지역민 독서 팀에 선정되어 성 평등, 청년실업, 노년, 다문화 가정 등 사회 문제를 다루는 텍스트를 주로 삼다 보니 다소 난해하다.

`딸은 아들이 아니다, 어떤 의미일까?'

딸은 아들이 아니라는 당연한 의미도 있지만, 아들 기준으로 딸을 해석하는 시대 고발로도 가능한 제목이다. 대부분 작가는 자신의 중심사상과 창작 의도를 책이나 글 제목에 장치한다. 자신을 대변하는 주인공의 성격도 이 안에 녹아있다. 그래서 책을 가까이하는 독자라면 표제만으로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가늠한다. 여성의 역사는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이해되는 왜곡된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비프케 폰 타덴의 『딸은 아들이 아니다』 책 제목 의미는 남성 중심으로 이분법된 열외의 성이라는 뜻이다. 할머니가 손녀 레베카에게 들려주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딸들의 역사 이야기는 남성의 반쪽과 부분으로 평가해 온 여성의 수난사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근대성을 억압해온 폭력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성의 외모와 품행은 평가의 대상이지만 지적능력은 폭력의 대상이던 시대를 엿본다.

몇 권의 성 평등 도서를 읽고 합평한 이후부터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모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남성들이 남성 젠더 중심으로 학습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맞벌이 부부 교사인 한 회원은 아내의 가사노동을 당연한 여자들의 몫으로 인식해왔는데 독서 모임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계기였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유연한 사고를 지닌 한 남성 회원은 퇴직 후의 가사분담을 해보겠다고 요리학원에 다니는데 요즘 말투도 “내가 도와줄게”에서 “내가 할게”식으로 바뀌는 중이라고 한다. 무의식중에 드러난 자기 안의 남성 중심적 사고에 놀랐다는 회원, `동료형 부부'가 대안이라는 긍정적인 방안을 제시한 회원도 있다. 여성 회원 대부분은 직장과 가사라는 이중 노동을 하고 있다. 주로 4, 50대 후반의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학습한 사람들이다 보니 매우 놀랄 일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안정된 그들이 골프 대신 독서를 하고 사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유한다는 데 매우 희망적이다.

나 역시 남성 중심 문화를 뼛속까지 젠더 규범으로 학습한 시대를 살았다. 남성 중심의 규범에서 불평등한 여성 위치를 인식하면서도 공적 언어화 하지 못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내 안의 여성의식도 남성 중심으로 학습된 것이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무지한 담론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남성 또한 사회적인 남성의 페르소나에 갇힌 인물임을 발견하며 편협한 이분법 공식에 공공의 악을 느낀다. 성을 수직화하는 억압은 결국 양성 모두 민낯으로 살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제 아담의 천국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새로운 전체를 모색할 때이다.

불평등을 푸는 키워드는 `내 안'에서 출발한다. 기준에 빗대어 호응하지 않으면 그 기준은 무가치해진다. 기준으로부터의 탈식민화, 그 길만이 천 개의 다양한 고원으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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