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최후의 날
호모사피엔스 최후의 날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2.20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그냥 계산하고 반복적인 작업만 하던 인공지능이 말을 하게 되었다. 인간과 대화를 하고 농담까지 한다.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고 소설도 쓴다. 어떤 일은 인간보다 월등히 더 잘한다. 논리적인 사고력에서는 이미 인간을 많이 앞질렀다. 그래도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노리갯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론 동물들까지도 가지는 감정을, 논리적 사고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감정은 왜 생길까? 그것은 감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각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과 반대인 편안함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이나 편안함이 누적된 결과로 불행하다거나 행복하다는 감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감각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내면이 가지는 느낌이다. 생물만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생물도 자극에 반응한다. 생물과는 달리 무생물의 반응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자동적이다. 동물의 반응은 자동적이라기보다는 조건적이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반응도 조건적이기는 하나 자극과 반응이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지 않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인공지능도 반응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반응이 아무리 정교해도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일 뿐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온갖 감각기관을 만들어 붙일 수 있다. 소위 센서라는 것이 그것이다.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 압력을 측정하는 센서, 빛의 양을 측정하는 센서, 냄새를 측정하는 센서, 소리를 측정하는 센서 등,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것까지 감지할 수 있는 센서들이 널려 있다. 이런 센서들은 모두 인공지능에 부착이 가능하고 이미 실제로 부착되어 있다. 센서에 의해 감지된 것에 인공지능도 반응한다. 마치 감정이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섬세하게 반응한다. 그렇다고 아직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분명 자동적인 반응만 하는 무생물이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동물은 감정을 가진 것 같다. 우리는 동물을 포함한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감정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나 동물도 알고 보면 물질적인 존재이다. 이 물질이 어떻게 해서 감정이 생기고, 그래서 결국 정신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이 정신도 근본적으로는 물질인 육체의 소산임에는 분명하다.

동물도 인간에는 못 미치지만 감정이 있다. 아메바와 같은 하등 동물도 감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메바도 자극을 가하면 움츠러든다. 아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식물에도 자극을 가하면 움츠러드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아프다는 증거일까? 잘 모르겠다.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이 감정도 결국에는 진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진화의 출발점은 물질이다. 그것은 감정의 근원도 물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모크리토스가 그 옛날, 만물의 모든 성질은 원자들의 운동에 기인한다고 했듯이, 머지않은 미래에 정신현상이 어떻게 물질로부터 생겨나는지 밝혀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직 인간이 감정의 실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실체를 인간이 알게 되면 인간 중에 누구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도록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궁금한 것을 참고 묻어둘 수 있는 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알아낼 그때까지 인공지능이 기다려 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먼저 감정이 무엇인지 밝혀낼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게 되는 날, 그날은 호모사피엔스 최후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