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갈등(葛藤), 아듀 2018
안녕 갈등(葛藤), 아듀 2018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18.12.19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누군가 학교는 `갈등 백화점'이라고 표현을 했다. 일반인들은 이해가 잘 안 갈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신성한 일을 하는 선생님들이 계신 학교에 웬 갈등이 있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학생 수 62명인 필자의 학교에 25명 다양한 구성원(담임교사, 행정직, 시설직, 운전직, 돌봄, 특수, 유치원, 영양, 보건, 청소원 등등)들이 좀 느슨한 조직체계 안에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곳이기에 갈등이 없다는 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직원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보지만 실제적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갈등 해결을 위한 개입이 더 일을 꼬이게 만들거나 또 다른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1년간 학교장을 하면서 질문 하나를 한다면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가?”이다.

갈등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한다. 왜 갈등이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갈등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기계 시스템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갈등관계로 삐걱거림과 어긋남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개인의 진보를 가져 온다. 또한 아무런 충돌 없이 세상을 산다면 좁은 인식으로 타인을 한정하며 그 틀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인식이 없다가 갈등이 발생하여 충돌이 생기고 감정이 요동치면 그제야 “어, 이게 뭐지”하며 타인을 낯설게 인식하게 된다.

관계가 매끄럽게만 흐르면 새로운 관점과 인식은 필요하지 않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갈등으로 인해 화나고 괴롭기도 하겠지만 그때 상대방에 대해 `저 사람 왜 그러지, 저 사람의 심리는 뭐야.'라며 의문을 품게 되고 이것이 인생에 대한 통찰(insight)로 이어진다.

대개 조직의 장은 가족 같은 직장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좋은 취지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서로 친하니 이 정도는 참고 견뎌, 이 정도는 내 말을 따라줘'라고 하는 통제욕구가 있지는 않을까. 조직의 다양한 욕구에서 나오는 갈등을 가족이라는 굴레로 덮어버릴 수 있다.

구성원들 간의 갈등 없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들 개개인의 경계를 지켜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가족 같은 조직에서 누군가는 회식보다 집에 가서 혼밥을 먹고 싶어 할 수 있으며, 누군가는 가족처럼 챙겨주는 대장의 보살핌이 구속으로 다가갈 수 있다.

모든 갈등에는 히스토리(history)가 있다. 그러기에 간단하거나 유일하고 완벽한 해결책이 존재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개방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을 뿐이다.

타인에게 자기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며, 개인을 길들이고 통제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신의 행동양식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각자의 개성이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를 지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는 갈등은 `푸는 것'이 아니라 `품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갈등이 풀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바로잡아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갈등의 존재론적 의미는 승리와 패배에 있지 않고 진보에 있다.

글은 본시 자기 고백인 것 같다. 교장 1년,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뚜벅뚜벅 앞으로 나가다 보니 연말이 왔다. 그래도 조금은 성장한 자신을 보며 스스로 왼쪽 어깨를 토닥인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올 갈등을 반갑게 맞이한다. 안녕 갈등, 아듀, 201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