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림
헤아림
  •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 승인 2018.12.18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이두희 공군사관학교 비행교수

 

“어머니, 별일 없으시죠?” “응, 나는 괜찮다.” “편찮으신 데는?” “없다, 너도 별일 없제?”

이 짧은 대화가 전부였다. 몇 마디 더 이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음성의 톤과 리듬, 그리고 여운으로 남는 희미한 떨림만으로도 어머니의 건강상태와 기분, 심지어 집안 대소사의 진행마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나의 심신 상태를 그렇게 헤아리고 계셨을 것이다. 대화의 길고 짧음이 모자간(母子間)의 심리적 거리이거나 사랑의 온도와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시골에 내려가서 직접적인 교감의 시간이 있었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은 늘 그런 식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 많은 편이다. 전철 안이나 거리를 걷다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의 시간이나 수업시간, 늦은 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가 걸려오고 메시지가 뜬다. 그만큼 서로 나누고 싶은 말이 많고 전해야 할 소식이 넘치는 세상이다. 정작 우리 사회의 가장 절실한 화두는 `의사소통'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의사소통이 그만큼 잘 안 되기 때문이겠지만,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 갈증이 해소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우린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을까?

청와대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여론을 다루는 인터넷 공간은 자기주장을 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서울 시청 주변도 늘 시끌벅적하다. TV나 라디오에서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토크쇼이다. 토크쇼에서는 출연자의 의사표현이 얼마나 자유롭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가 인기를 좌우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들을 출연자가 시원하게 내뱉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의사표현에 목말라하고 있다.

언어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의사전달에 있어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45%)고 한다. 그것마저도 말의 어조와 음성이 대부분을 차지(38%)하고 단어의 의미가 전달하는 것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단다. 실질적인 의사전달은 절반이 넘는 55%가 선입견과 분위기, 손·발짓이나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의사전달은 주고받는 말의 의미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짐작과 헤아림'이 대부분(93%)이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문자와 카카오톡과 같은)의 한계가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메신저의 말에는 단어의 의미만 있을 뿐 서로에 대한 헤아림이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하고 오해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화의 모습이지만 동상이몽으로 상대방에게 동조해 달라는 강요에 그치고 만다.

시 창작을 배우러 갔더니 첫 시간에 지도교수는 “시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부터 꺼냈다. 현대시의 난해함을 보는 것처럼 모순이요, 역설인 이 말에 대한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학기가 지난 지금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짐작하건대 직접적이기보다는 행간과 여백 속에 감추는 표현이 더 아름답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보다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는 여유로운 표현, 교훈적인 말보다는 사색을 하게끔 하는 표현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여러 말이 오가는 연말이다. 헤아림이 있는 아름다운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꿈과 감동을 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