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약속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8.12.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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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몇 시나 되었을까. 조용한 방안, 높이 걸려 있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는 방안의 모든 소리를 잠식해 버렸다. 몇 시간 째 몸을 뒤척뒤척했지만 시계 소리는 이불을 뚫고 급기야 베개 틈새까지 비집고 귓속 깊은 곳에 자리를 틀고야 만다. 그렇잖아도 쉬 잠들지 못하는 성격인데, 잠자리까지 바뀌다 보니 몸이 영 편치가 않다.

나의 학창 시절, 친정집 거실에는 좁은 공간에 비해 키가 큰 괘종시계가 집안을 지키는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안방 문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 괘종시계의 흔들이가 종을 칠 때마다 나는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마치 우리 가족을 감시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녘, 네 번의 종소리는 곤하게 주무시고 계실 어머니 아버지를 깨우는 소리이고 여섯 번의 종소리는 우리 형제들을 깨우는 종소리다. 우리는 그 종소리에 맞춰 일어나 일찍 들에 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대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누렁이 암소의 소죽을 끓여야 했다. 시계가 고장 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가 시계가 힘이 없다 싶을 때면 태엽을 감아 놓으셨기 때문에 내 소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괘종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오 년을 먼저 앞서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우리 곁을 떠나가신 어느 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의 삼우제를 지내고 친정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친정집은 빈집으로 일 년 가까이 주인이 부재중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서니 괘종시계의 흔들이는 꿋꿋하게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종을 치고 소리도 질러댔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으니 집안 살림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괘종은 아직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언니와 오빠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야속했지만 그래도 제일 오래 지켜본 내가 알려주는 게 맞는 처사인 듯도 해 조용히 괘종시계의 옆문을 열었다. 괘종은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흔들이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쉬웠다. 흔들이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는 그것도 모자라 흔들이를 분리시켜 놓았다. 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괘종의 초침은 흔들림도 없이 움직였다. 우리는 친정 살림살이를 모두 정리했다. 하지만 거실에 서 있는 괘종만큼은 어느 누구도 가져가려 하지도 없애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괘종만을 남긴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을 가린다면 단연코 시계이지 않을까. 알리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잠시 쉬고 싶은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시계의 운명이니 말이다. 애초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약속이란 멍에를 지우고 세상에 나와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수도 있으나 그 수고로움은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매 순간은 약속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부의 관계, 부모 자식의 관계,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거미줄 속 같은 얽혀 있는 관계에서도 무언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약속이 있다. 물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하지만,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 내는 시계 같은 사람이 있어 이 사회가 유지되고 지켜지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시계는 똑똑한 체를 하며 잘도 간다. 내가 아무리 원망을 해도 끄떡없던 그 옛날 친정집 괘종소리만큼이나 참 얄밉게도 간다. 그래도 어쩌랴. 저 우직하고 충직한 시계를 탓하느니, 얇은 귀와 무디지 못한 마음을 지닌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그래야, 오늘 밤의 끝이라도 잡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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