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고사목
의림지 고사목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8.12.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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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고사목이 오롯이 누워 있다. 나무는 긴 세월 뿌리내리고 그늘을 드리우며 살아온 의림지 못 둘레 길에 누워,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고사목을 자연 그대로 비다듬어 사람들이 지나다 걸터앉아 쉴 수 있도록 길게 눕혀 놓았다. *“육신이 썩어 없어지는 그날까지 나를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휴(休)로 남고 싶다.”라는 한 문인의 시구가 나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여겨져 더 애잔한 마음이 든다.

고사목은 이미 수명을 다하고도 한 해 정도 살아있는 듯이 다른 나무들과 같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어느 날 의림지 길을 걷다가 `고사목 ○○번 소나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었다. 고사한 원인과 시기, 수령 등 안내 문구를 보고 놀랐었다. 나무의 연륜만큼 두툼한 보굿을 만져보고도 믿기지 않아, 고개를 젖혀 우듬지를 확인하고 나무가 생을 달리 했음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운동 길에 지나다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보고 툭, 툭, 잠자는 나무를 깨우듯 두드려 보기도 했었다. 노송들을 관리하는 곳에서도 그런 바람으로 고사목이 긴 잠에서 깨어나듯 회생하길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긴 세월 훼손되지 않고 지금도 농업용수를 책임져오고 있으니 자랑스럽다. 수백 년씩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깨동무하듯 어우러져 의림지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나를 비롯한 많은 지역 주민들은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또는 마음이 답답하거나 울적해도 의림지를 찾는다. 아니면 오랜 지기를 만나거나 핑크빛 사랑에 물든 연인들도 2km 정도 되는 못 둘레 길 소나무 밑을 다정히 걸으며 정을 쌓곤 한다.

장년이 된 두 아들이 아기일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오며 때때로 그 그늘에 들어 휴식을 취하곤 했었다. 몽동발이 되어 누워있는 고사목을 보면 그냥 예사나무로 보이지 않음은 나뿐이랴. 지날 때마다 고사목을 보면 큰 어른을 만난 듯 무심히 지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의림지 둘레 길을 걷다가 나무의 바람대로 걸터앉아 결을 어루만져 보며 잠시 쉬어간다. 나이테가 백여 년을 살았음을 전해준다.

한 생을 의림지 못 둑을 지키고 그늘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휴식공간을 준 나무이다. 생을 마친 지금도 사람들이 자신의 몸 위에서 편안히 쉬어가는 쉼의 자리로 남고 싶다는 글귀를 읊조리다 보니 그만 염치없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일백 년을 산다 한들 그런 배려심이 나올까 싶은 마음에서이다.

그렇지만, 긴 세월 살아온 터전에 누워 의림지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못다 한 밀어를 나누지 않을까. 물안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사이로 자맥질하는 어미와 새끼 오리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위로가 될 것 같다. 뿐인가. 백년지기 노송들이 내려다보고 삶의 이야기를 바람에 실어 조근조근 들려줄 터이다. 고운 새 한 마리 날아와 지저귀는 걸 보니 그 새도 고사목의 은덕을 노래하고 기리는듯하다. 어쩌면 고사목은 새로이 태어나 그 자리에 있음이리라.(백년의 휴(休) 한인석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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