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잘했더라면
그때 잘했더라면
  • 김정연 원불교 충북교구 교의장
  • 승인 2018.12.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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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정연 원불교 충북교구 교의장
김정연 원불교 충북교구 교의장

 

나이를 먹었음일까요? 나름 열심히 살았던 젊은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솟아오릅니다. 힘들었던 일들을 유추해 보면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친 옹졸한 이기심 때문이지 싶습니다. 내가 싫으면 상대도 싫다는 평범한 이치를 머리로는 알면서 행동은 그리 못해 허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신중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부주의는 삶에 교훈도 주지만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합니다.

1990년 4월은 어수선했던 해입니다. 건축 시장이 원활하지 못할 때니까요. 그런데 관광호텔을 만들겠다고 기획을 했습니다. 물론 굴뚝 없는 산업으로 외화수익을 앞장세웠고, 청주에 큰 행사를 할 때면 호텔이 하나밖에 없어 객실이 부족한데다 그해 10월 전국체전이 있었기 때문에 숙박 난 해소에 일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업승인을 받고, 건축허가를 얻어 착공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건설 현장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자재 파동이 가져온 바람은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하기 힘들었고, 인력난까지 겹쳐 공사가 하루하루 늦어졌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난감할 때가 많았지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고요. 그 타들어가는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때마다 인부들에게 공사를 재촉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왜 그토록 애를 태웠을까요? 잦은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리 서두르고 조급해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준공일자를 몇 번 미루다 결국 다음해 5월 18일 개관을 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전국체전에 일조하겠다는 명분 때문에 질타를 받았지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한 준공 후에는 청주 시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문인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요. 로얄 시대라는 말까지 회자됐으니 그 과분한 사랑은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고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걸림돌이 장벽이 되어 환경을 바꿨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 이전, 도심공동화 현상이 몰고 온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때 대형 특급호텔의 출현은 위협적인 실체였지요. 그 여파는 영업부진으로 이어졌고 끝내 문을 닫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삶이란 항상 지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듯이 영업이 잘될 때는 어려움이란 없을 듯했는데 시류 따라 문을 닫았고, 세월이 흘러 막상 헐어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딱히 잘못이 없음에도 지난날을 반추해보게 하네요.

어느 날인가 아침 일찍 출근했을 때 커피숍에서 풍기는 원두커피의 향이 감성을 자극해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잊혀지지 않습니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비지니즈를 위해 내한한 외국인들이 로비에서 대화할 때는 관광인으로서 긍지를 가졌는데 이제 추억 속으로 잊어야 한다니 공허한 마음입니다.

철거를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건물에 투자된 자금과 정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테지요. 이미 무관한 처지인데 철거라는 한마디에 괜스레 마음이 허전하고 아리네요. 허전함도 집착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미련이 남는 것은 호텔에 그만큼 정성을 쏟았으니까요. 또한 청주와 인연을 맺게 해주었고 설계부터 관여해 문을 닫을 때까지 동고동락하며 함께 길을 걸었으니 어찌 애착이 없겠습니까?

법문에 세상의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다 생의 요소가 있으며 하나도 없어지는 것은 없고 다만 그 형상이 변해갈 따름이다 했으나 구석구석 손이 안 간 곳이 없으니 건물이 해체된다 해도 그 잔영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시간이 지나더라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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