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여자이고 싶다
향기나는 여자이고 싶다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12.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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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외출시간에 마음이 바쁘다. 한파로 코끝을 스치는 찬바람이 목을 감싸는 차가운 날 코트와 목도리 그리고 부츠로 한껏 멋을 내고 거울 앞에 선다. 단장을 아무리 해도 칙칙하고 생기 잃은 얼굴, 뭔가 부족한 듯 언밸런스가 되어 그늘진 것처럼 계절 탓인지 피부 톤이 어둡다. 언제부터인가 거울 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눈 밑에 거무스름하게 올라온 기미와 군데군데 점들이 눈엣가시처럼 꽂혀 화장을 덧칠했다.

외모지상주의 의학에 힘을 빌려 피부 관리 차 주말을 이용하여 병원을 찾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젊은이들, 대학 새내기 같은 어린학생들, 그리고 중년의 여인들 사이에 아내와 동행 한 중장년층 신사들 묵묵히 순번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번 시술을 하고 검진을 하러 온 사람들까지 병원로비는 부산스럽게 북새통이다.

여자와 집은 가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이 말도 옛말이다. 외모지상주의에 발맞추다 보니 피부과는 물론 성형외과 등 남, 여 구분없이 다양하게 시술, 수술을 받는다. 백옥 같은 피부가 동안을 만들고, 탱탱한 피부가 젊음을 유지해주고 있으니 누군들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주근깨가 많은 사람은 그것이 결점으로 콤플렉스가 되고, 기미 때문에 산뜻하지 않은 피부는 더 진한 화장으로 덧칠하다 보니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인위적인 모습으로 외려 불편하고 어색하다.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듯 인상 좋고 깨끗한 피부의 외모는 자신감을 높여주고 대인관계도 발전시킨다.

얼마 전만 해도 남자들은 쭈뼛쭈뼛 거리며 성형을 상담했는데 요즘은 성형사실을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는 세상이다.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묘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들떠 부푼 마음으로 거울 앞에서 칙칙하게 올라온 기미와 점 부분에 마취용 연고를 골고루 꼼꼼히 펴 발랐다.

몇 해 전, 예뻐지느라 아픈 그녀들의 이야기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24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내용 등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 책 내용 중 유치원 아이들도 예쁜 선생님을 따른다는 예시를 들었고,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외모 조건으로 인하여 예뻐지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도 담았다.

참으로 씁쓸한 단면이다. 어찌 제목부터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일까. 외모 강박시대 오죽하면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되었을까마는 아픈 현실이다. 어떤 이는 미련한 여자는 용서돼도 못생긴 여자는 용서가 안 된다, 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누군가의 못생겼다는 말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깊이 박혀 평생 상처가 되어 외모보다 말로 베인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남몰래 아파한다. 여자는 외모강박 때문에 외모관리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에 평균체중이 아닌 미용체중이 되려고 끝없이 다이어트와 전쟁을 한다. 물론 체중도 중요하지만, 피부도 그림자처럼 외모관리에 따라다니는 끝없는 과제다.

머리로는 내면이 아름다운 향기 나는 여자여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외모로 평가하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보다. 시술을 마치고 벌집 쑤셔놓듯 울긋불긋 벌겋게 변해있는 거울 속에 내 얼굴, 남이 볼까 얼른 모자와 마스크로 외면의 모습을 감추고 돌아오는 길, 왠지 쓴 미소가 번지고 알 수 없는 헛기침이 난다. 아름다움은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일 텐데,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자는 말이 오늘 유달리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민낯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갈망, 진정 외모에 대한 욕망은 끝이 있기나 하는 걸까. 나도 향기나는 여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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