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名門)
명문(名門)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18.12.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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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내가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도와 교육청이 서로 각을 세우고 으르릉거리던 무상급식 타결 조건 중 하나가 인재양성을 위한 명문고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때만 되면 반복하는 무상급식 문제도 문제지만 그 이름도 낯설게 다가오는 명문고 육성이라는 말이 더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아울러 그 필요성에 대한 설명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청주에 명문고가 없어서 교육환경이 좋은 인근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간다는 논리다.

흔히 말하는 명문고의 조건은 간단하다. 서울대학에 몇 명이 합격했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고교 평준화 1세대다. 명문고라는 말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던 말이다. 우리 학교를 명문고로 만들어야 하고 그 목표는 서울대학에 더 많이 입학을 시키는 것이었다. 서울대학 합격자 수가 명문고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기준인 것이다. 이를 위해 특수반도 설치하고 별도의 교육과정도 운영했던 기억이 난다. 고교 1학년 시절에 필자는 운이 좋아 공부를 정말 잘하던 친구가 앞뒤에 있었다. 이 친구들은 정말 머리가 좋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두 친구 중 하나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고 또 하나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지금도 소중한 내 친구들이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우리 지역과는 관계없이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당연한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지금도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역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명문고를 육성하여 일류대학에 많은 지역학생을 입학시키면 이들이 나중에 각종 시험에 합격할 것이고 중앙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인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지역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이들이 정치에 나가 국회의원도 되고 고위직 공무원이 되고 자치단체장도 맡아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재가 지역발전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허구다. 이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양성된 인재는 지역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명문고를 졸업한 학생들이 우리 지역 대학에 진학할 리 만무하다. 서울에 지역 학생들을 위한 좋은 기숙사를 짓는 것은 그 자체로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결국 이런 일들은 지역의 청년들을 타지로 유출하는 촉진제가 될 뿐이다. 가뜩이나 입학생이 줄어들어 무너지는 우리 지역 대학에 더 큰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을 우리 지역에 더 많이 머무르게 하려면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명문고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화와 여가, 의료와 복지, 환경과 교통과 같은 삶의 조건과 일자리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늘 높은 충북의 자살률이 보여 주듯이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수립과 대대적인 예산투입이 필요하다. 미래의 인재는 명문고에서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안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소통과 공감, 창의와 혁신, 비판과 협력의 역량은 학교가 아니라 삶에서 형성된다. 우리나라가 지금 앓는 수많은 문제의 중심에는 그들만의 명문고와 끼리끼리의 인재 네트워크가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종류의 인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사람, 지역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갈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역에서 살아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지역에 있는 학교를 더 많이 지원하고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고 지역 대학에 더 많은 투자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아직도 개발시대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높으신 분들의 인식이 안타깝다. 이분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명문고는 지역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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