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야말로 가해자다
국회야말로 가해자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2.1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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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제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더 이상 옆에서 죽는 모습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0월 산자위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나온 공공운수노조의 한 간부가 한 말이다. 그는 화력발전소에서 20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용역노동자이다.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고 호소했던 그는 불과 두 달만인 지난 11일 또다시 발생한 동료의 죽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 서야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씨가 그날 새벽 홀로 야간 근무를 하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기 때문이다.

풀코드 스위치라는 것이 있다. 공장에서 비상사태 발생 시 당겨서 운전을 중단할 수 있는 장치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은 위험한 조업장에 이 장치를 설치토록 하고 있다. 김씨가 숨진 작업장에도 풀코드가 있었다. 그러나 김씨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 옆에서 스위치를 당겨줄 줄 동료가 없었던 것이다. 최소 2인 1조 근무가 전제돼야 만 풀코드는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김씨를 고용한 하청업체의 내부 지침은 2인1조 근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침은 현장에서 휴지쪽에 불과했다. 김씨는 온몸이 차례로 벨트에 빨려들어가 조각이 나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홀로 죽어갔다.

2년 전 서울 구의 전철역 사고 때도 2인1조 근무가 준수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됐었다. 당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는 스크린 도어에 끼였을 때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이번 사고는 그 이후에도 하청 근로자의 홀로근무 관행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유는 한 가지, 돈 때문이다. 수익을 올리는 수단으로 인건비 쥐어짜기를 제일로 치는 것이 우리 기업의 속성이다.

그렇다고 하청업체의 욕심만 탓할 수도 없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위탁업체의 입찰자격을 슬금슬금 완화했다. 실적과 경력 기준을 완화해 입찰 문턱을 한껏 낮췄다. 응찰 업체가 늘어나다 보니 가격 경쟁이 낙찰을 좌우할 수밖에 없었다. 적자까지 감수하지 않고는 낙찰받기 어려운 입찰구조가 된 것이다. 저가에 작업을 수탁한 하청업체가 1인 근무를 강행한 데는 이런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발전소는 김씨가 주검으로 발견되고 나서도 1시간이 지나서야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현장을 방치한 상태로 대책회의라는 것을 했다고 한다. 시신의 수습도 구급대가 아니라 고인과 몇 시간 전 저녁을 함께 먹었던 하청업체 동료들에게 시켰다. 이 발전소에서는 지난 2010년 이후 12명의 근로자가 작업 도중 사망했다. 근로자가 숨진 현장에 이런 푯말을 세운다고 한다. `안전수칙 미준수, 사건 조사 후 징계 및 과태료'. 사지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죽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살벌한 경고까지 보낸 것이다. “발전소는 하청 노동자들을 개·돼지 취급한다”는 한 노동자의 항변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이번 사고는 2년 전 구의역 사고의 완벽한 재판이다. 피해자 소지품에서 컵라면이 나온 것까지 닮았다. 왜 우리는 구의역에서 한치도 나가지 못했을까. 당시의 끓던 공분과 넘치던 각오는 어디로 갔는가.

무엇보다 국회의 책임을, 국회의 직무유기를 방기한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등 파견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10건 가까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모두 상임위 통과조차 못 하고 있다.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손을 놓은 이유는 기업의 부담을 걱정해서란다. 법안을 준수할 경우 기업이 받게 될 재정 부담이 과도해진다는 이유로 심사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 기업의 이윤이 사람 목숨보다 우위에 서는 세태에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한 꼴이다. 그들에게 하청 노동자들은 유권자도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청 노동자가 아니라고 유권자를 자처할 수 있는가? 우울한 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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