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과 거위
장률과 거위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8.12.13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헌의 소품문

 

영화를 보고나서 감독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릴 때가 있어요. 우리 영화의 경우 박찬욱과 봉준호와 홍상수와 오멸과 양우석이 그랬는데, 장률이 더해졌어요. 개봉을 앞둔 `마약왕(DRUG KING, 2017)'을 보고 나면 우민호도 그럴 것 같지만요.

장률 감독의 경우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Ode to the Goo se, 2018)'가 호기심을 증폭시켰어요. 물론 `경주(2014)'라는 영화에 대한 기억이 밑밥으로 작용하긴 했지만요. `장률'이란 이름 앞엔 시네아스트(cineaste)라는 말이 붙기도 하더군요. 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예술세계가 있어 존중받는다는 얘기죠.

그의 이름이 무심코 지나치긴 그렇기도 해요. 그의 이름 글자 `률(律)'은 `운율'과 `규율'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가 만든 영화들이 그만의 `리듬'과 `작법'을 느끼게 하니 즐겁답니다.

“공간의 질감에 어울리는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충실하고 싶다.” “누군가의 깊숙한 꿈을 공유하고 싶다.” “영화는 소통이 안 되면 다 깨진다.” “우리네 일상에 함께 하는데 시선을 주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면 소통이 더 잘 될 것 같았다.” “관점만 얘기하면 일상이 다 없어진다.” 장률이 쏟아낸 거침없는 말들은 주워담기 힘들만큼 시네아스트다웠어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고는 장률의 인터뷰들을 추적하지 않을 수 없었죠. 추적의 결과물로 세 가지를 내놓으며, 그가 꺼낸 말들로 증거를 삼고 싶군요.

1. 장률은 때론 도시 전체가 미장센이 될 정도로 공간에서 의미를 얻는다. “내가 어떤 공간에서 느낌이 오고 거기에서 못 빠져나올 적에 그 공간을 찍는다. 찍다 보면 그 안에 메시지가 담기게 된다.” “공간, 특히 시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내 마음을 건드린다.” “늘 누군가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린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일상을 살았을까?”

2. 장률은 시간을 편집하면서 기억을 강화시킨다. “영화는 사실을 찍는 게 아니라 기억을 찍는 것이다.” “기억은 자기만의 순서가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순서가 맞을까 생각해봤다. 보통의 영화들은 시작과 결말을 중시하고 중간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는 중간까지 와야 앞과 뒤가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 삶을 중간 지점에서 바라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3. 장률은 교만을 싫어한다.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다국적 이방인들에게) 한국에 와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어냐고 묻는 것은 교만한 질문이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을 해야 한다.” “감독으로서 어떤 결말을 명확히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솔직히 그건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모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영화 속 흐름처럼 순서 없이 살고 다음에 뭘 할지 잘 모르고 산다.”

장률 감독은 농익은 말들도 잘하더군요. 붉은 해를 삼킨 홍시처럼 말입니다. 고3 때까지 심하게 말을 더듬어서 사람들이 병신이라고 했다는데 말이죠. “다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있고, 그래서 서로 상처를 주지만 결국 그 사람만의 외로움이 있다.” “너무 빨리 변하고 사라지는 게 너무 싫다. 정신없이 시대 흐름을 쫓아가는 건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감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남기고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이렇게 눙칠 수도 있군요.

영화를 보고나니, 누가 거위인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키고 싶어지기도 했어요. 영화의 영어 제목에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기리는 서정시를 뜻하는 `송시(ode)'라는 말을 썼으니까요. 영화에선 물론 윤영(박해일 분)이 우리 안에 갇혀 상추나 받아먹는 거위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게 장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비유와 상징의 전부는 아닐 거예요.

어쩌면 “어떤 리듬으로 마음속에서는 춤추고 있는”사람들은 다 거위일지도 모르겠어요.

/에세이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