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능
불수능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12.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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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담담한 마음이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러 청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바깥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로웠다. 시험 보기 전날에도 편안 마음으로 잠을 자고 시험에 응했다. 실력이 뛰어나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합격하면 다행이고, 합격하지 못하여도 그리 실망하지는 않겠다는 편한 생각이었다. 애초부터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딸인 나를 대학공부까지 시키기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아쉽지만, 고3 초부터 일찌감치 대학에 대한 꿈을 접었다. 다만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공부를 해야겠기에 학교 공부만은 착실히 하였다. 대학입시원서를 쓸 때가 다가오자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어머니의 간절한 뜻을 못 이기는 척하고 지원을 한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평소 실력이었는지 교대에 합격해 42년 6개월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였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까지 보내준 하늘처럼 높은 어머니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교대 등록금이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무척 고생을 하셨다.

1968년 당시는 수능 없이 곧바로 대학입시를 치렀다. 당시 대학진학률을 찾아보니 남성 14.9% 여성 5.6%밖에 되지 않았다. 대학진학률이 70%를 넘는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과외를 받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나는 참고서조차 사볼 형편이 아니었으니 과외라는 건 상상도 못했고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입학시험이나 졸업식에도 늘 혼자만 참석했다. 그 시대의 대부분 학생이 나와 같은 형편이었을 게다.

이제는 시험을 보는 학생들 못지않게 부모님들까지도 자녀교육에 뛰어들어야 하는 힘든 시대가 되었다. 복잡한 입시제도 때문에 바쁜 자녀를 대신하여 부모님들의 정보가 빨라야 자녀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영어공부를 시키고, 외로운 기러기 부모의 생활도 감수하며 유학을 보내고, 상상 못할 고액의 과외비로 가정 경제가 위기를 맞는 때도 있다. 이런 현상을 교육열이 높다고 해야 할지, 지나친 교육이 낳은 부작용이라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심지어 교사가 자녀의 성적을 조작하는 기막힌 사건으로 학교와 교사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시험을 잘 못 보아 비관한 수험생들이 생명을 던지는 일도 있다. 입시제도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깝다.

수능시험을 보는 날, 교문에 매달려 추위를 견디며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애를 태우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보기에 너무나 안쓰럽다. 성적이 잘 나오면 다행이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시험이 어렵거나 실수를 하여 한 순간에 공든탑이 무너지는 듯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마음도,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에는 불수능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난도가 너무 높아 어려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다. 어쩌다 대학입시가 이처럼 기막힌 단어를 탄생시켰을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가 까다롭게 출제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당황하고 실망했을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나아가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입시제도와 사회제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불수능의 어려운 관문을 뚫고 좋은 성과를 거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혹여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못한 학생들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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