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무와 말동무
길동무와 말동무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12.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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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동무라 부르지요. 어릴 때 소꿉놀이하며 같이 놀던 소꿉동무, 어깨에 서로 팔을 얹어 끼고 놀던 어깨동무, 소중한 동무를 씨동무라 부르듯이.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인 벗과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인 친구와 오십보백보입니다. 길동무를 길벗이라 불러도, 말동무를 말벗이라 불러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같은 의미인데도 길친구 말친구란 말은 쓰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 동무란 좋은 말이 친구로 둔갑한 지 오래입니다. 광복 이후 남한과 체제를 달리한 북한 정권이 그들의 통치수단의 하나로 이웃이든 관료이든 당원이든 간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무란 말을 쓰게 해서 생긴 반작용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를 `아바이 동무'라 부르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하여 소꿉친구, 불알친구, 학교친구, 군대친구처럼 모두 친구로 통칭되고 말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은 말이 있으니 그건 바로 길동무와 말동무입니다. 먼 길을 무사히 다녀오려면 친구와 함께하란 말이 있듯이 길동무란 길을 함께 가는 동무. 또는 같은 길을 가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이릅니다.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속담처럼 더없이 좋은 친구가 바로 길동무입니다.

지쳐 쓰러지면 부축해주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 달래주고, 갈림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일 때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난관에 부딪혀 허덕일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가 바로 길동무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길동무가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이처럼 함께 하면 힘도 덜 들고 성과도 더 좋게 낼 수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길동무가 있는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길, 인생길이어도 좋고 여행길이어도 좋습니다. 동무, 부부여도 좋고 연인이어도 좋고 불알친구여도 동창이어도 좋습니다. 길을 걸을 때, 먼 길 떠날 때 옆에 함께 하는 이가 있으면 든든합니다. 외롭지 않고, 서로 의지처가 되니 겁날 게 없죠.

말동무도 길동무 못지 않게 좋은 친구입니다.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말에 공감해주고, 맞장구쳐주는 친구를 가진 이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들어주는 이가 없으면 공허합니다. 아니 슬픈 일입니다. 노년이 외롭고 고독한 것은 말동무가 없어서입니다.

어느 여류시인의 넋두리가 생각납니다. `어머나 밖에 흰 눈이 내려요. 함박눈이' 했더니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래요. 그래서 병석에 누워 있어도 없는 것보다 더 나은 게 남편이라고, 말동무가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았다고.

그래요. 내 말을 무시로 들어주는 이가 있는 이는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설사 잔소리나 지청구 일지라도 내게 말을 걸어주는 이가 있는 이는 다복한 사람입니다. 아무튼, 말은 주고받아야 합니다. 달변이 아니어도 미사여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족합니다, 아니 그런 친구가 진정한 말동무입니다. 핸드폰에 등록되어 있는 수많은 전화번호와 이름들, 카톡에 등재되어 있는 수많은 얼굴과 이름들을 검색해봅니다.

그 속에 길동무와 말동무라 부를만한 이가 별로 없으니 헛살았음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지인인 건 분명한데 딱히 이 사람들이 내 길동무이고 말동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하여 제가 먼저 그대의 길동무와 말동무가 되겠습니다. 그리 살고 싶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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