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곶감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8.12.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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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무시로 부는 바람에 냉기가 감돈다. 스산한 마음에 수안보로 향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들어서자 눈에 든 것은 주택 담장 너머 우람한 감나무였다.

빈 나뭇가지에 따지 않은 감이 넉넉히 달렸다. 알도 굵어 먹음직스럽다. 주인이 까치에게 보시할 소중한 만찬일 거다. 까치밥을 남겨 놓은 주인의 후덕한 성정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올가을 감들을 가득 안고 세상을 붉게 물들였을 나무를 보노라니 어느새 나는 고향집 울안에 서 있다.

고향집 뒤란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가을이면 탱탱한 감들이 새색시 볼처럼 붉게 달아올라 주렁주렁 매달렸다. 어머니는 시월이면 집안일 틈틈이 감을 따다 깎으셨다.

감 껍질 벗기는 일도 예삿일이 아니다. 몸체를 손에 쥐고 칼로 돌려 깎는 어머니의 손놀림은 정교하면서도 빨랐다. 그 중 야무진 놈을 골라 실에 꿰어 처마 끝에 매달아 말리셨다. 곶감을 만드는 과정은 긴 시간 기다리며 떫은맛을 우려내는 일이다.

감을 말릴 때 일정한 간격도 중요하다. 간격이 촘촘하면 통풍이 되질 않아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적당한 틈새로 바람이 들락거려야 꾸들꾸들 말라간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평온함이 오래 유지되며 가까울수록 마찰이 생겨 마음에 골이 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가을이면 고향집은 황태덕장처럼 줄줄이 엮은 감들의 축제가 벌어졌다. 서릿바람 불면 그들은 처마 끝에 온몸을 맡긴 채 춤을 추었다. 때론 왈츠로, 때로는 탱고로 춤은 계속 이어졌다. 그들의 축제가 끝날 무렵 속살은 말랑말랑한 반시로, 겉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한 황갈색으로 변했다.

나무에 걸린 감이 저절로 곶감이 되진 않는다. 따스한 햇살과 이따금 흔들어주는 바람, 밤마다 다정하게 소곤대는 별빛에 제 몸을 숙성시켰으리라. 궂은 날도 많았을 터,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몽니를 부려도 끄떡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빨리 곶감을 먹고 싶은 마음에 막대기를 휘둘러 엄마 몰래 먹고 시치미 뗀 적도 있다. 그날 달콤한 맛의 기억 때문인지 감나무를 보면 입안에 침이 고였다. 떫은맛이 단맛이 되기까지는 숱한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곶감으로 탄생된다. 드디어 하얀 분이 꽃을 피우고 달콤한 곶감이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이것을 벽장에 두었다가 추운 겨울, 식구들의 간식으로 챙기셨다. 구진 할 때 한 입 베어 물면 쫄깃쫄깃하고 속살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추위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훈훈했었다. 고뿔이 심해 열이 날 때도 엄마가 해 준 수정과 한 사발을 들이키면, 나는 약이라도 먹은 듯 금세 나았다. 엄마의 정성 담긴 곶감은 영혼까지 살찌게 했다.

어머니의 생애는 곶감을 닮았다. 곶감이 되기까지 부드러운 햇살의 속삭임이 있었는가 하면 거센 비바람과 불볕더위와 맞선 고통도 있었다. 곶감이 모든 이들에게 약이 되듯 어머니는 세월에 꺾여 몸이 부서지고 삶이 버거워도 당신의 뼛속에 바람 드는 줄도 모르고 자식들에게 온몸을 바치셨다. 오직 자식 위해 떫은맛은 우려내고 말랑말랑한 단맛만을 입에 넣어주신 어머니. 그래서 곶감은 어머니의 사랑이자 그리움의 상징이 됐다.

돌아오는 길, 반시 한 상자를 내 집에 들였다. 가지런히 열을 맞춘 쭈글쭈글한 곶감들이 희뿌옇게 웃는다. 세상 떠나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아프게 겹쳐진다. 나는 이 겨울 곶감을 먹으며 그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을 곱씹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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