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년 전 마음을 나눈 편지
450년 전 마음을 나눈 편지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18.12.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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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1977년 4월. 청주시 청원구 외남동 금천 석병산 남쪽기슭의 한 무덤이 청주국제공항 건설공사로 이장하게 되었다.

청주의 대표적인 서원인 신항서원의 3대 원장을 지낸 채무이(蔡無易,1537~1594)의 무덤으로 그의 둘째 부인 순천김씨(~1574)와 합장했다. 12cm 두께의 관·곽을 갖춘 회곽묘이다. 이 무덤에서 나온 미이라화된 순천김씨는 산사람처럼 젊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입관 후 관의 남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평소에 입었던 철릭, 누비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모시 치마, 베적삼 등 10여 점의 의복과 만사, 표주박, 인장, 돗자리 등과 함께 당시 채씨가문에서 주고받은 편지 192점이 나왔다. 귀중한 편지가 이 세상에 되돌아온 것이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글이다. 편지는 간찰(簡札), 서신(書信), 소식(消息)이라고도 한다. 한글편지가 주로 여성이 사용했다고 하여 내간(內簡)이라고도 하고, 언문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언간(諺簡)이라고도 한다. 순천김씨 무덤에서 출토된 편지는 간찰 명칭으로 국가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순천김씨 무덤에서 나온 192점의 편지는 모두 닥나무 한지에 각각 하나의 낱종이에 쓴 것으로 한글편지 189점, 한문편지 3점이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여백을 두지 않고 빼곡하게 채워 썼고 하고픈 말이 많았던지 뒷면까지 쓴 것도 적지 않다. 편지 내용을 보면 순천김씨의 친정어머니인 신천강씨가 3남 4녀 중 셋째 딸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117점으로 가장 많고, 남편 채무이가 부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40점, 그밖에 순천김씨의 부모인 김훈과 신천강씨가 아들, 딸, 며느리, 사위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편지 가운데 글 맺음 후 `을묘 구월 순육일에 이별하네'라 쓴 것이 있다. 이는 1555년(명종 10)에 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63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편지 중 하나이다.

편지 중 가장 많은 것이 순천김씨가 친정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남편 김훈이 예순 나이에 종6품의 외관직인 찰방(察訪)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첩을 들이는 과정에서 오랜 부부싸움을 하였다. 남편이 끝내 첩을 들이자 신천강씨는 남들이 시샘한다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딸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부부간의 갈등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의 첩들임으로 신천강씨는 서러워 칼과 노끈으로 자살하고 싶다는 감정을 숨김없이 거칠게 표현하기도 하고, `여자란 것이 오래 사는 것만큼 사나운 일이 없구나'라고 한탄스런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기도 하였다. 모녀간에 깊은 속마음을 나눈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채무이는 부인 순천김씨의 건강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며 애달파 하고 있다. 부부간에 배려의 마음이 묻어 있다. 매우 자상한 남편이었던 것 같다. 이에 장모 신천강씨가 사위 채무이에게 `그대가 고맙게 하는 일은 내 이생에서 갚지 못할 것이네'라고 하여 사위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편지는 시집간 딸을 그리는 모정, 첩을 본 남편에 대한 미움과 하소연, 종들이 알면 질투라고 할까 봐 드러내 내색도 못하는 서러운 마음, 병들고 가난한 늙은이의 쓸쓸한 마음, 출타한 남편의 집안 걱정과 안부, 병중인 아내에 대해 애달파하는 마음 등 삶 속에서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그밖에 경제생활, 식생활, 의복과 염색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채씨가문에서 마음으로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편지 사연 속에 담긴 내용은 국어사, 문학사, 서예사, 생활사, 여성사,문화사,복식사 등 학술적 가치가 크며, 16세기 후기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순천김씨 무덤에서 나온 의복·편지 등 일괄 유물 203점은 “청주출토 순천김씨묘 의복 및 간찰”명으로 중요민속자료 제109호(1979.12.13.)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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