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위로
12월의 위로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8.12.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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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두 눈에서 나온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면, 암흑은 양옆으로 갈라져 끝없이 열린다. 내가 움직여 가는 것인지 끝없이 다가오는 시커먼 터널이 나를 지나가는 건지, 나는 칠흑 같은 우주의 공간을 질주하고 있다. 아침에 지난 길을 어둠 속에 되짚어 달리고 있다.

친구는 장거리 운전이 어렵다고 했다. 나도 광명까지 가는 길은 모르지만 처음 가는 길이면 모르는 건 당연하다. 세상엔 아는 길보다 모르는 길이 훨씬 많은 법이다. 그러나 복잡한 도심으로 들어갔을 때는 살짝 후회도 됐다. 숯불 가마에서 등을 지지며 친구와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에 대한 긴 얘기를 나누었다.

`길'이라고 소리를 내면, 이것은 짧게도 느껴지고 길게도 느껴진다. 가늘 것도 같고 굵을 것도 같다. 좁을 것도 같고 넓을 것도 같다. 직선일 것도 같고 조금 굽어 있을 것도 같고, 조금 더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도 같다. 끝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다.

길, 이것은 공간이기도 하고 시간이기도 하다. 단번에 가도 좋고 중간에 쉬었다가 가도 좋다. 끝을 알고 있기도 하지만 모르기도 한다. 짧게 끝나도 긴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길에는 반드시 또 다른 길이 이어진다. 출발이기도 하고 과정이기도 하고 목표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아직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뚜렷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길에서 마주하는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길에서 만나는 것 중 지나고 나서야 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안개이다. 길은 방향이 있다. 여러 방향이 있어도 결국은 한 방향이다. 가도 가도 어둠이어도 계속 간다. 언제까지 어둠이 계속될 것 같지만 결국 어느 안도의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어두운 고속도로는 끝없이 이어진다. 나의 눈만이 직선 위에 움직이는 점처럼 뚜렷해진다. 어느 순간에는 움직임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숨결만 남는다. 나는 우주의 아주 작은 점, 미약한 숨결이다.

매년 맞이하는 한 해의 끝자락인데, 왜 매번 힘들까? 나름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허무하기만 하다. 어른이 되면 지난 일은 모두 넉넉히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순리가 훤히 보일 줄 알았다. 지나온 길도 앞에 놓인 길도 여유롭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비뚤배뚤한 선 한 끝 위에 놓인 한 점일 뿐이다.

큰딸에게 우울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햇빛 많이 쐬라는 답이 왔다. 그 단순한 해답에 빙긋이 웃음이 난다. 별것도 아닌데, 참으로 위로가 된다. 햇빛 한 줌이면 회복될 거라니,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친구도 그렇게 말했었다. 곧 동지가 다가온다고, 조금만 견디면 곧 끝난다고. 친구는 하지가 지나면서 하루하루 낮이 짧아지는 것처럼 서서히 다운되었다가 동지가 지나면 하루하루 낮이 길어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살아난다는 것이다.

한해의 끝자락, 이 춥고 어두운 틈새에 햇빛 한 좀 끌어들여 봐야겠다. 언제나처럼 내 안 거기 누워 있는 길, 그 길을 따라 근사한 뭔가가 없는데도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온 것도 대견하지 않은가? 어느 길에서 지치고 허무하지만, 별것이 없음에도 또다시 일어나 길을 나서는 것, 묵묵히 걷는 것 그것이 사는 것 아닐까.

그래도 부족하다면 햇살이 사방으로 부서지는 곳으로 찾아가자. 사계절 따뜻하다는 적도의 나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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