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없는 영혼
육체 없는 영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12.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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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원시인들은 인간의 영혼을 실제 인간의 축소판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새나 쥐와 같은 동물의 모습으로 코나 입을 통해서 사람의 육체를 드나드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잠잘 때에는 영혼이 코를 통해 나가서 떠돌아다니다가 돌아오는데 가끔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이 자다가 이유도 없이 죽게 되는 것은 영혼이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이고, 이 영혼을 관념이 아닌 실체적 존재로 생각했다.

어떤 영화에서는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고도 했다. 주술사들이 영혼을 불러내기도 하고 불러들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혼을 감금할 수도 있었다. 신앙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의 일반인들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다.

영혼은 육체와 대비되는 말이다. 나는 분명히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육체 말고 영혼도 가지고 있을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웃고, 울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온갖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정신도 있는 것 같다. 영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정신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죽은 후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영혼은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우니 좀 쉽게 정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정신이 무엇일까? 과학적으로 보면 정신은 뇌세포의 작용임에 틀림없다. 모든 사고활동이 뇌의 활동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뇌가 없는 정신은 있을 수 없다. 뇌 자체는 정신이 아니고 육체다. 육체인 뇌의 활동이 정신이라면 정신은 당연히 육체의 소산이다.

우리가 그처럼 상반된 것으로 생각해 왔던 정신과 육체가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정신없는 육체는 있을 수 있어도 육체 없는 정신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서구 문명은 정신을 육체보다 상위적 지위에 올려놓았지만 실은 정신은 육체의 하수인일 뿐이다.

기분이 좋고, 우울하고, 화나고 하는 이 모든 감정, 행복감을 느끼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이 자유로운 내 정신의 주체적 결정이 아니고 신체의 조건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정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부위를 자극하면 금방 기분이 나빠지며, 어떤 약물을 복용하면 천국에 있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지만 어떤 약물을 투입하면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정신은 육체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나의 정신인 내 영혼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영혼이라는 존재를 잘못 정의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혼은 육체의 작용에 의해서 생기는 그런 정신이 아니라 정신을 지배하는 더 상위적인 존재라고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할까?

우리가 말하는 정신이란 육체, 더 구체적으로 뇌의 활동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뇌가 없어지면 정신도 없어진다. 그런데 육체에 기반을 둔 그런 정신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정신, 육체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정신, 그런 것이 정말 있을까?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 `말씀'이란 무엇일까? 물질인 이 세상을 창조했으니 그것이 물질은 아닐 것이다. 물질이 아니면서 만물을 창조했으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혼이 아닐까? 육체가 없어도 존재하는 그런 정신,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혼이 아닐까? 하지만 성경 말씀이 영혼이라면 그것이 우주적 영혼일 수는 있어도, 내 영혼과 당신의 영혼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은 자꾸만 의문을 낳는다. 육체 없는 영혼, 육체 없이 하는 사랑처럼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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