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의 덕목
호롱불의 덕목
  • 최명임 수필가
  • 승인 2018.12.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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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명임 수필가
최명임 수필가

 

칠흑같은 밤엔 호롱불을 앞장세워도 무서움은 늘 따라다녔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뒷머리를 낚아챌 것 같은 밤의 공포만 없었다면 산골은 나의 기억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이다. 호롱불은 이타적 배려로 누군가의 손에 들렸을 때 미덕이 빛나지만, 그때는 어머니의 손에 들렸을 때 가장 훌륭했다.

오두막을 밝히던 등잔불이 하나 둘 꺼지고 침묵에 빠져들면 산골은 괴기스러운 어둠으로 가득 찼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괴물과 씨름해야 했다. 밤이 이슥한데 불볕보다 뜨거운 열이 났다. 꺽꺽 우는 소리에 어머니께서 놀라 등잔불을 켰다. 무지막지하던 공포를 삼켜버린 조그만 등잔불은 어둠을 태우느라 밤새 시커먼 그을음을 게워냈다. 그런 밤이면 등잔불은 든든한 파수꾼이 되고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잤다.

마을 허리께 호롱불을 닮은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마을을 지켜주었는데 어른들은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희망을 거론하곤 했다. 아이들은 고목의 미더운 눈빛 아래 달빛과 어울렸고 어두운 밤에도 생의 방향성을 따라 기차게 놀았다. 어른들은 가끔 그런 아이들을 위해 호롱불을 걸어놓고 아이들의 포부를 부추기곤 했다. 그 불빛을 얻어 몸살이 나도록 밤을 열어젖혔는데 `함께'라는 든든함과 환희에 찬 에너지로 더 운 달았을 거다. 꿈같은 날들, 햇볕 바른 오동나무 밑 그 한 축에 나도 끼여 있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어둠이 괴물처럼 지키고 있다. 골목 어귀에는 도깨비가 숨어 나를 노리고, 귀신의 괴괴한 휘파람 소리가 귓전을 맴돌면 오금이 저렸다. 그럴 때마다 큰 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대한민국 만인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으니 어떤 주문보다 강력한 힘이 되었으리라. 그런 나를 찾아 나선 어머니의 호롱불은 또 하나 즐거움이기도 했다.

나의 유년은 어둠의 풍요와 공포 속에서도 어머니의 호롱불과 천연스러운 달빛, 등잔불 같은 오동나무를 중심으로 가멸차게 성장했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이다. 방관자일 때는 허연 어둠이 잠식해 가는 앞차를 바라보며 신기했는데 정면 돌파해야 하는 운전자의 입장에 서니 난감하다. 쏜살같이 달리는 저 대범함이 진정 부럽다.

차 한 대가 1차선을 질러 내 앞으로 들어섰다. 쌩하니 달아나버린 앞차와는 달리 나를 안내한다. 이런 고마울 데가. 안심하고 따라오라는 미등은 그날 밤 어머니의 호롱불 같은 존재였다. 갑자기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초보운전을 면치 못한 내게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아마도 안개 속을 멋모르고 들어선 철부지 운전자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질리도록 허연 어둠 속에서 미등은 보일 듯 말 듯 간당거렸지만 붙들고 있으니 시야에서 점점 확장되었다. 그 사실 하나로 사람들은 저마다 미등 같은 희망을 안내로 험난한 인생길을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호롱불과 어둠을 삼켜버린 등잔불은 때때로 내가 불안할 때 미등처럼 켜진다. 미더운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주던 오동나무와 달도 여전히 산골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변함없는 이유는 아직도 가멸차게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미등과 등잔불과 빛나는 달은 호롱불의 덕목이다. 세상 곳곳에 켜져 있음을 알아채면 사는 것이 그리 헛헛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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