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12.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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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오혁의 소녀가 울려 퍼진다. 소녀 같은 엄마를 위하여 선택한 곡이라 했다. 얼음이 되어 있던 나는 감미로움에 녹아내린다. 이보다 더 듣기 좋은 노래가 있을까. 어느 유명한 가수의 노래에 비하랴.

나의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에서 아들이 부른 축가다. 건조하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여러 상황이 나를 긴장시켜 웃음기를 빼앗긴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진다. 바빠서 휴일도 없는 녀석이 와 준 것만도 좋은데 기쁨이 몇 곱절로 불어난다. 저절로 피어나는 엄마 미소다. 여지없이 나는 아들 바보가 된다.

행사를 마치고 나를 친정조카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자 요즘 엄마에게 노래 불러주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제 짝 될 여자한테 사랑을 고백할 때나 해준다면서 말이다. 부럽기까지 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한목소리로 맞장구를 친다. 나는 순식간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성공이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들어보지 못할 소리였다. 내 생에 있어 무슨 큰일을 해서 좋은 결과가 있을 일도 없다. 부와 명예는 더욱 거리가 멀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진 것도 아니고 노래 한 곡으로 단숨에 듣게 된 소리다. 아들로 하여 듣게 된 성공이라는 단어가 싫지만은 않다.

노력보다 성공이 먼저 나오는 곳은 사전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노력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틈이 생겨 허물어지는 탑과도 같다. 허술한 시간으로 여정을 보내놓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처럼 성공은 눈이 멀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에 있어 실패는 다독여서 이끌어 주는, 강하게 일으켜 세우는 어머니다.

삶에서 아들은 늘 내 안에 살았다.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커오면서 돌부리에 넘어지는 일들이 잦았다. 상처가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하면서 어느새 성인이 된 아들이 이제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힘들 때는 위로로 토닥여주고 기쁠 때는 박수를 쳐주며 지켜보는 게 내 몫이었다. 실패를 하여 힘들어하는 모습보다 포기할까 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게 겁났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제일 걱정했던 시간은 아들이 재수했던 일 년이다. 이렇게 더디게 흐른 시간도 없다. 온갖 유혹이 많을 나이에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보내는 불안함은 나의 시간도 멈추게 했다. 현혹되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조마조마함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이게 했다. 아들 전부가 나의 기도였던 셈이다. 아플까 봐, 힘들까 봐, 이탈할까 봐, 모두가 걱정이었다.

이렇게 지켜보는 과정은 그를 얽매이게 하여 구속하고 싶은 건 아니다. 절대로 집착도 아니다. 혹여 실패하고 좌절하면 일으켜 세워주고 싶은 엄마마음에서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지만 나는 수한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공은 묵묵히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다려주는 반가운 손님일지 모른다. 길을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가다 보면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얼떨결에 듣게 된 어설픈 성공이란 말. 엄마로서의 내 길을 지금도 쉬지 않고 잠잠히 걷고 있는 나에게 준 특별선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들이 빛나게 해준 나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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