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와 적선
적폐와 적선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12.0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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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모아서 쌓아 두는 것을 적립(積立)이라 하지요.

눈이 쌓이는 걸 적설(積雪)이라 하듯 선행이 쌓으면 적선(積善)이 되고 나쁜 짓거리가 쌓이면 적폐(積弊)가 됩니다.

그래요. 많을수록 좋은 게 적선이고, 적을수록 좋은 게 적폐입니다.

나쁜 관행이나 그릇된 사고의 틀과 행동양식들이 고착화되거나 일반화 되면 조직과 사회와 국가를 좀먹거나 망치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남들도 그래왔으니까 괜찮겠지 하며 저지르는 게 바로 적폐입니다.

적폐는 부패를 낳고 비리를 양산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적폐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분야마다 요소요소마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적폐로 인해 국가의 경쟁력은 날로 추락하고 국민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하여 적폐는 척결해야 하고 일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낳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문제인 정권이 국정 전반에 쌓인 적폐를 척결하겠다며 서슬 퍼런 청산의 칼을 뽑아 든지 어언 2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기대 반 우려 반입니다.

적폐청산의 당위성에는 지지와 환호를 보냈지만, 추진의 순수성에는 의문부호를 달고 있어서입니다.

그들의 정적이자 경쟁자인 보수세력들의 정치적 재기를 둔화시키기 위해 지난 과오들을 들추어내어 난도질하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이 또한 척결되어야 할 또 다른 적폐이며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낳는 도돌이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적폐청산을 한답시고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날 선 칼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러왔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척결하고 청산했는지,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피부에 와 닿는 게 별로 없습니다. 아니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쌓인 적폐가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적폐를 청산하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웅변합니다.

조직, 사회, 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을 해야 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처벌도 해야 하며, 그런 고통을 슬기롭게 감내하고 극복해야 하니 말입니다.

적폐청산의 길은 현 정권과 살아있는 권력이 과거 정권과 죽은 권력을 도륙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우일신하고 살신성인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적선부터 해야 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아전인수적인 처신과 행보는 적폐와 진배없습니다.

옛날 거지들은 마을을 돌며 집주인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한 푼 적선합쇼' 하며 구걸했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동전 몇 닢이나 남은 음식을 떼어 주곤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적선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 사회가 베풂에 인색해졌습니다.

저부터가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여 자신을 돌아봅니다. 폐(弊)를 더 많이 쌓았는지, 선(善)을 더 많이 쌓았는지를.

돌아보니 과음·과식과 무절제로 종합병동이 되었으니 육신의 적폐요, 위선과 교만과 허세를 켜켜이 쌓았으니 정신의 적폐가 분명합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일일일선하며 살려 했으나 행동이 이에 미치지 못했으니 치사하기 그지없는 적폐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허비하고 낭비한 내 청춘에 깊이 사죄합니다.

남은 생이라도 이런 적폐의 사슬을 끊고 죗값을 치르듯 자신과 이웃에게 적선하며 살겠습니다. 조용히 느릿느릿.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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