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패딩의 예술 -겨울왕국
롱패딩의 예술 -겨울왕국
  •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 승인 2018.12.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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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강석범 청주 산남고 교사

 

롱패딩은 한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초겨울부터 롱패딩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겨울이 되면 모두가 약속한 듯 길고 두툼한 검은색 롱패딩으로 하나가 됩니다. 가히 대한민국 겨울 교복이라 해도 크게 과장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수업시간에 한 교실을 들어갔습니다. 순간 교실 뒤편 사물함에 일렬로 걸려 있는 롱패딩이 필자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와~ 저건 뭐지? 물질적 롱패딩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덩치 큰 검은색 롱패딩이 일렬로 쭉 자리 잡은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강력한 힘을 느꼈습니다. 마치 필자를 향해 무언가를 시위하는 듯한….

2002년 6월을 기억하는 독자 분들은 대한민국을 방방곡곡 물들인 붉은 티셔츠와 국민응원단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붉은색으로 하나 된 서로의 엄청난 모습을 보며 다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 대단하다, 이건 예술이다!” 해외 프로그램들은 당시 이 붉은 물결을 실시간 특집으로 자국에 내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어떠한 것 일지라도, 동일한 형태와 색채가 무한 반복되면 정말 커다란 무언의 힘을 실어 상대방에게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월드컵 경기장에서 온통 붉은색 옷을 입고 귀가 찢어질 듯 외치는 `대한민국~' 소리를 들으며 경기하는 상대국가 선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현대미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같은 색이나 같은 형상을 무한 반복해서 원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어린이들이 흔히 먹는 사탕을 전시장 한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다든가' 또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노출되어 있는 `신문 뭉치를 전시장에 가득 채워 놓는다' 고 가정해 봅니다.

이때 전시장 사탕 더미를 보고 `맛있겠다! 실컷 먹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와우~저게 뭐래?' 순간 관람객은 낯설고 거대한 사탕형태의 덩어리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즉 원래의 용도와 물성이 잠시 변질되어 관람객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신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장 신문 더미 조형물을 보면서 그 속에서 신문의 머리기사가 뭔지 관찰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조형물을 보면서 대개는 `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지요? 전시장에 놓여 있는 사탕이나 신문지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현대미술에서는 전통적 미술개념이 많이 변해서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고도 미술작품의 물성보다는 아이디어, 또는 언어적 의미와 내용, 그리고 작가의 사고나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는 일종의 `개념미술' 작품이 자주 등장합니다.

교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 뒤편 사물함에 쭉 걸려 있던 검은색 롱패딩은 필자에게 단순한 롱패딩 이상의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저 뒤에 걸려 있는 롱패딩을 개념미술작품이라 생각하고 작품제목 한번 붙여볼까요?”

한 녀석이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겨울왕국요~”우리 아이들은 요즘 겨울 왕국에 살고 있는 공주님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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