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가는 길
되돌아가는 길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8.12.0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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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밤이다. 길바닥은 온통 빗물에 반사된 차들의 불빛으로 어룽어룽하다. 그 때문인지 그물에 걸린 것처럼 잡념들이 머릿속에서 일렁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똑같은 길이었음에도 목적지를 향해 갈 때와 그 목적을 이루고 가는 길은 사뭇 다르다.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내기도 하고 앞지르기도 하면서 달렸다. 마음에선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하면서도 실상 어떤 일이 닥쳐오면 그 마음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린다.

반환점, 우리는 누구나 되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 그 반환점은 각기 다르다. 우리가 자신의 반환점을 안다면 자신의 삶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은 그 누구에게도 어디쯤이 반환점이 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사람은 삶이 영원할 것처럼 흥청망청 써 버리는가 하면, 누구는 삶이 의미가 없다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많지는 않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하며 평생을 살기도 하고, 기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을 종종 마라톤에 비유한다. 물론 어느 종교에서는 삶이 잠깐의 꿈이라고도 한다. 그 얘기는 우리 삶이 단거리 경주도 안 될 만큼 짧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생각하기에 인간의 일생은 그리 짧지만은 않기에 장거리 경기인 마라톤에 비유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라톤은 속도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리는 사람에게는 반환점에 도착하기까지의 거리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무작정 달려간다. 그러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부터는 힘이 빠져 완주까지 힘겨워진다. 물론 마라톤을 많이 참가한 선수라면 속도 조절을 잘하겠지만 우리는 인생을 여러 번 살아보지 못했기에 잘 지치고, 어떤 때는 주저앉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을 때가 잦다.

그래도 실제 마라톤 경주에서는 중간 중간 도착지까지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식지가 있으니 마음으로라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 마라톤의 표식지는 어디에도 없다. 아직도 남은 거리와 남은 시간이 많은가 하여 딴 곳으로 빠지는가 하면, 숨이 차도록 달려 갑자기 쓰러지기도 한다.

올해도 벌써 종착지에 다다랐다. 문득,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분명 반환점은 돌았을 터이다. 욕심은 없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종종 허물어진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내 삶의 종착지에 대한 궁금증은 그만 벗어버리려 한다. 그래야 또 걷고 달릴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우리 사회도 대장정의 길을 걸어왔다. 남북 간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반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며칠 전 남북을 이어줄 철도 조사단이 북한으로 출발했다. 가슴이 벅찬 일이다. 남북의 문제는 단 몇 년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고 끈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 간다면 언젠가는 종착역까지 갈 수 있으리라 본다.

어느새 집이 가까워져 온다. 남은 거리보다 온 길이 더 많아서일까. 뒤돌아보게 된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숨이다. 연초에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천천히 느리게 걸었던 한해였다. 그동안 너무 달려서일까,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천천히 라도 가보자는 마음으로 다독여 걸어온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안으로부터 다시 힘이 생긴 듯하다. 다시 시작이다. 느린 달팽이와 거북이를 친구 삼아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한다. 어느 만큼의 길이가 될지는 모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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